지호는 25개월

by 나르는꿈

지호는 왜 할머니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며 가는지 안다.

여느 때 같으면 할머니가 동요를 시작하면 지호도 같이 부르며 할머니는 낮은 소리로 화음을 넣는 정도인데 지금은 지호가 고개를 숙이고 앞만 보고 걷는데도 할머니는 계속 혼자 노래를 불렀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지호야 산토끼가 어디를 가고 있을까요?"

할머니는 가던 걸음 멈추고 허리를 굽혀 지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럴 때 지호는 "알밤 주으러!"하고 큰소리로 답했을 텐데 오늘 아침은 아무런 답도 안 한다. 왠지 할머니 목소리가 슬프게 들려서 지호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말을 하면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지호는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떼를 쓰며 할머니에게 안길 때 지호를 달래는 할머니의 울먹이는 소리를 들었었다. 지호가 울면 할머니도 운다는 걸 지호는 그때 알았다.

사실 지호는 이제 어린이집을 다녀야만 한다는 사실을 어린이 집 가는 셋째 날 알았다.

셋째 날 아침에 비가 왔었다.

다른 동네 사는 할머니는 아빠 엄마가 일 나가기 전에 전철을 타고 와서 지호를 돌보아주었다.

할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나가서 물장구치며 놀게 해 주었다. 할머니와 함께 노는 중에 비 오는 날은 더 신나게 물장구치며 놀 수 있어서 지호는 그 생각에 벌써 신나 있었다.

그런데 비가 오면 집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반대편으로 가면서 지호는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어린이집에 간다는 생각이 그때 났다. 비가 오면 안 갈 줄 알았는데. 지호는 울고 싶었다.

어린이집으로 가는 큰길도 평소에 할머니랑 다니던 산책길이다. 길가 나뭇잎사이 거미줄에 있는 거미들과 인사도 하며 지호가 좋아하는 차단봉과 교류하며 신나게 다니던 거리였다. 그냥 어린이집을 지나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린이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앞 차단봉에서 걸음을 멈추었을 때 지호의 맑고 큰 까만 눈동자가 흔들리며 금방 눈물이 그렁거렸다. 싫어! 싫어! 지호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뒷걸음질 쳤다.

할머니가 지호를 꼭 안고 어린이집 앞에서 지호를 내리니 두 눈을 꼭 감고 할머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지호는 내리자마자 오던 길로 뛰어나갔다.

저만큼 떨어져서 지호는 할머니도 돌아오기를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한참을 그렇게 지호를 바라보다가 지호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이렇게까지 해야 하니? 지호가 너무 운다."

지호는 엄마에게 전화하는 할머니의 슬픈 목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도 집에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와서도 지호가 완강히 저항을 해서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지호가 싫어하면 지호생각을 먼저 알아주고 지호말을 들어주었었다. 집에 비슷한 장난감이 있어도 지호가 떼를 쓰면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할머니도 지호의 말을 다 들어주었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은 아무리 떼를 써도 지호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일하다가 달려온 아빠도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지호는 지금 두 번째 생일이 막 지난 25개월.

아빠와 엄마는 이제 친구와도 놀아야 한다고 친구들이 있는 어린이집을 다녀야 한다고 한다. 동네에 지호 또래의 친구가 없어도 할머니 하고 집에서 책으로 도미노 놀이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블록 쌓기도 하고 즐겁게 놀다가 오후에는 놀이터에서 친구들도 만나는데 왜 꼭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지 지호는 알 수가 없었다.

아빠도 엄마도 없는 낯선 곳에 할머니도 없이. 지호 혼자 어디 가본 적이 없는데 지호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다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호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할머니 품에 안겨 울어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지호를 할머니에게서 떼어 안고 들어갔다. 선생님에게 안겨 들어가면서 지호는 할머니를 부르며 울었다.

할머니도 어린이집 문밖에서 눈물을 닦는걸 지호는 보았다.


여전히 할머니는 지호의 기분을 좋게 해 주려고 손을 잡고 밝게 노래도 부르며 숫자세기도 하고 지호대신 나뭇잎의 거미줄에게 지호의 인사도 전하면서 지호의 표정을 살폈다. 안 들어간다고 떼를 쓰지는 않지만 떨어지려 않는 지호를 품에서 보낼 때는 할머니도 지호처럼 속으로 울었다. 가는 길이라도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데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상했다.

올 때는 머뭇거렸지만 잘 걸어와서 어린이집이 보이면 지호는 얼굴을 파묻고 품에 안겼다.

울먹이는 지호를 다독이며 어린이집 초인종을 누르자 선생님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호에게 두 팔을 벌렸다. 그때 할머니는 너무 놀라 입을 깨물었다.

할머니 품 안에서 안 들어간다고 그렇게 울던 지호가 선생님이 팔을 벌리자 냉큼 할머니를 감고 있던 두 팔을 풀고 선생님에게 와락 안기는 것이다. 여전히 그 큰 눈에 눈물이 흐르는 채로 흐느끼며 선생님의 품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아무런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단호할 정도로.

할머니는 너무 놀라 한참을 어린이 집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도 지호처럼 어린이집이 싫지만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호가 울면 할머니도 같이 울었다.

이제는 할머니에게 안겨 우는 지호를 선생님이 억지로 떼어 내는 게 싫었다.

할머니가 슬퍼서 울지 않도록 지호 스스로 씩씩하게 들어가야지 하는데 눈물이 자꾸만 나왔다.

선생님이 지호를 할머니에게서 떼어내려고 했을 때 지호는 잡아당기기 전에 먼저 얼른 선생님에게 안겼다.

'할머니 울지 마!' 말을 하는데 "엉엉" 하고 울음소리가 더 크게 나왔다.

어린이집 가는 아홉 번째 날 지호는 용감하게 스스로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할머니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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