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by 나르는꿈

"다 주고 사셨는데도 끊임없이 주시려고 하시네요"

다소 꾸민듯한 습관적이 미소를 띠는 요양보호사의 말에 여자는 순간적으로 속에서 용암 터지듯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뭘 주었는데, 무얼 받았지? 대체 사람들은 왜 자기 일 아닌 일들에 선한 척 지랄들일까.

면회시간이 끝나고 돌아서는 아들을 보고 시어머니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로 차비라도 줘야 하는데 지금 가진 게 없다고 어떡하냐면서 미안해하니 시어머니의 휠체어를 밀던 요양보호사의 말에 욱한다.

한 달에 한번 시어머니가 있는 요양원방문을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동행한다. 하지만 결코 친절하게 시어머니를 대하지 못한다. 준비해 간 간단한 간식을 면회실 테이블 위에 차려 놓고는 남편 뒤로 물러나 앉는다.

남편이 그의 어머니와 마주 보며 간식을 권하며 동문서답 같은 단답형 대화를 간간이 한다.

기억을 잃은 사람하고 할 말이 얼마나 있겠나 대화를 한다는 게 서로 자기의 말을 하고 바른 대답 같은 건 애초에 기대도 안 한다.

"밤에 잘 주무셨어요? 어때요 잠자리는 편해요?"

"나는 몰라 아까 왔다 갔어"

" 다음 주에 누이가 엄마 보러 온대요"

"이거 좀 먹어요 맛나네 "

두어 마디 대화 아닌 대화를 하고 나면 먹는 것에만 집중하며 시간을 메워 일어서곤 한다.

여자는 최대한 시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용히 있는데 어쩌다 여자를 본 시어머니는 친절하게 말한다. 올케도 여기 앉아요. 하는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뻔뻔하게 여겨져 그럴 때마다 여자는 몸서리를 친다.

언제나 당당한 시어머니에게 아들은 아버지이고 며느리인 여자는 올케이다.

요양원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저만큼에서 안전띠로 고정된 채 휠체어에 앉아서 남편을 보고는 두 팔을 번쩍 들고 아이고 아버지 오셨네, 하고 환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다가온다. 돌보는 요양사가 아드님 이세요 하고 말해도 우리 아버지라고 되려 소개를 한다. 그리곤 여자를 보고는 올케라 한다.

한 발짝 떨어져서 여자는 면회실로 앉은 채 밀려 들어오는 시어머니의 건강상태를 가름해 본다.

일 년 전 요양원 입원시기에 폐렴으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적이 있었던가 싶게 근력은 떨어져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더 단단하게 생기 있어 보이는 게 예전에는 단단한 알밤 같았으면 지금은 맹랑한 도토리 같아 보였다. 오늘은 머리를 감은지 얼마 안 되었는지 숱이 많이 빠졌는데도 풍성해 보였다. 다시 회춘하는가 싶어진다.

가져온 간식도 여자가 예상한 평소의 먹던 양 이상은 먹지를 않는다. 남편이 아쉬워하며 한입을 더 권해보지만 어림없다. 아버지 잡수시란다.

사람만 기억 속에서 뒤죽박죽 얽히고 지난 일들의 순서가 엉키고 혼돈될 뿐 자신의 루틴은 잊지 않는 거 보면 정말 자기애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 것이다. 그렇지 당신이 한 말 그대로 천년만년은 못해도 오래오래 건강하셔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진심으로 여자가 먼저 죽기를 간절히 원한다 여자는 시어머니의 제사상은 자기가 차리고 싶지 않다 시어머니에 대한 그 무엇도 여자는 관여하기를 거부한다.

여자가 남편과 함께 요양원을 오는 건 남편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다 늙어 이혼이 뭔 말이냐며 이혼을 거부하는 남편에게 여자는 더 이상 시집식구들에 대한 자기의 예의를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분명히 했었다.

치매 오 년을 합쳐 사십 년을 모신 시어머니와 예의를 다한 시집식구들이었다.

결혼하자마자 고등학교 중학생의 학부형이었다는 걸 여자는 한참을 지나서 깨달았다.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남은 동생들과 오로지 시아버지만 보고 살던 시어머니는 남편의 책임이었다

여자의 시어머니는 당당했다. 물질적 빚이 아니라 자기 자식에 대한 의무를 장남에게 떠 넘기고 뻔뻔하게 당당했다. 가진 재산이 있었으면 장남에게도 베풀었을까? 남편은 일찌감치 결혼 전부터 집안을 돕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장남은 받는 사람이 아니고 주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거기에 반항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남편이 안쓰럽고 대단해 보였다. 마음으로 이해를 했다. 여자는 하자는 대로 따르며 살았었다. 사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렇게 시집 식구들과 어긋날 일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시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셔야겠다고 남편이 결정하고부터 시집식구들은 그들끼리 만남을 가졌다. 여자가 불편하다고 대놓고 말을 하고 여자의 남편은 조금 더 친절하라고 요구했었다.

여자는 폭발했다.

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집에 새사람이 잘못 들어와 그렇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맘에 안 든다고 친정부모를 들먹일 때도 다 감수하고 살은 건 그래도 남편은 여자의 편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런데 아직도 더 잘하라는 남편의 말에 여자는 깨달았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것을

여자는 스스로 깨어났다. 최선을 다 했다. 여기까지다. 그렇게 마음이 굳어졌다.

나이 들어 이혼하는 걸 쪽팔리다며 웃어넘기는 남편이 여자는 또 안쓰럽다. 굳이 저렇게 회피하는데 당장 안 산다고 집을 나갈 생각을 여자도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결혼하고 처음으로 사십 년 만에 다짐을 받는다

내게서 친절을 바라지 마라고 여자는 단호하게 말하고 남편은 무언 중 수긍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친절하지도 못하면서 남편을 따라 요양원을 오는 건 같이 살기 때문이고 남편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를 문병 와서 손 한번 내밀지 않고 웃음 한번 주지 않고 한 발짝 멀리 있다가 앞서 나가는 며느리를 보는 요양원의 사람들에게 여자는 어떻게 보일지 굳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맘대로 생각하세요 나는 나쁜 며느리입니다. 하는 마음이다. 그런 여자를 몸을 떨게 만드는 건 함께 살 때는 차라리 비굴한 거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던 시어머니의 당당함이 이제는 뻔뻔함으로 다가와 생각이 없는 와중에도 나긋한 목소리로 웃음을 띠며 말하는 걸 보고 듣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라면 가엷다 귀여운 아기 같으시다 하는 담당요양사의 말에 같이 인정하며 측은한 맘이 들겠는데 그럴 때마다 흘러 보낸 시간들이 떠올라 가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지만 여자는 남편을 재촉하지 않고 나갈 때까지 참았다. 그러다 시어머니를 한없이 베푸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추켜세우는 말에는 속 깊은 곳에서부터 돌덩이가 밀려 올라옴을 참아야 했다.

사람들은 왜 타인에게서 자기를 내세우려는 걸까

정신이 없는 거동 불편한 치매 노인을 돌보는 자신을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 왜 드러내고 싶은 걸까

오늘따라 여자는 물어보고 싶어진다. 당신이 봤냐고 주고 살았는지 어미라는 이유로 받기만 했는지 당신이 아냐고 따지고 싶어 진다. 천진스럽게 웃고 있는 시어머니를 보니 엉뚱한 대로 화가 난다.

예전에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에게 느낀 그 어이없음이 오늘 요양원에서 되새김되면서 같이 울컥한다. 아침 준비 다 해놓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을 챙기며 사는 여자에게 이웃들은 시어머니가 다 해주셔서 좋겠다면서 자기들의 노고를 은근히 내세웠었다. 여자는 입도 벙긋 못했다. 그때 여자는 속으로 말했었다

네가 살아봐라라고

오늘도 여자는 속으로 분노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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