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제 기분대로이다. 둘째 하영은
"깜박 잠들었어, 전화했었네"
저녁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해 눈 온다고 전화를 했었다.
받지 않았지만 내리는 눈을 보고 한 거라 다시 하지는 않았는데 자정이 훨씬 지난 한밤중에 전화해서는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면서 능청을 부렸다.
선영은 뻔히 보이는 하영이의 말투에 살짝 짜증이 났다
"눈이 와서 했지, 자"
하고 싶은 말은 짓궂게
'그러고 싶니?'였다.
오후 늦게 막내 여동생과 전화통화 후 하영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가 언니 선영이도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상관없다. 저녁 무렵 전화 왔을 때 못 받아서 했다고 하면 된다.
언니 선영이가 하영의 전화를 안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드물게 받지 못하면 문자나 늦게라도 전화를 해 준다.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 부재중 전화를 보고 답을 안 해 주냐고 투정을 부리는 하영을 언니는 감당해야 했다.
정작 하영이 자신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더러 받지도 않고 잠수도 타서 언니의 애간장을 태우지만 언니는 탓하지 않았다.
늦은 밤 불쑥 전화해 놓고는 하영은 속엣말을 하지 못했다. 언니가 별일 없지?라고 한마디만 더 했더라면 전화 한 김에 막내에게 대거리 못한 거 언니에게 풀어놓을 심사였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밤이 깊음을 알고 있었기에 통화를 잇지 못했다.
언니의 반응을 보니 모르는 눈치이다.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든 하영을 두둔하며 마음을 풀어주려 했을 것이다. 언니는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더 울화가 치밀었다. 둘째인 하영과 동생들은 때로 투닥거리기도 하는데 큰언니 하고는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났다.
언니와 여동생 둘인 하영이는 둘째다.
네 자매가 특별히 우애가 남다르다던가 하는 건 없었지만 자매들끼리 크게 다투거나 동생이 언니에게 격하게 대드는 일은 없었다.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나이가 들어서도 큰 이견없이 네 자매는 잘 어울렸다.
그런데 제일 온순하고 조용하던 막내가 갑자기 전화해서는 제 기분만 앞세워서 일방적으로 따지듯이 떠들어 대더니 큰언니 한 테나 잘해라고 일갈하고는 일방적으로 끊어 버렸다.
무슨 연유인지는 말 듣는 중에 충분히 알겠는데 그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생각도 틈도 주지 않아 하영은 변명조차도 못했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민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그것보다 막내가 언니에게 다짜고짜 큰소리로 따지듯 대들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어려서도 젊어서도 안 당해본 일을 육십이 넘은 나이에 막내 동생한테 혼나 듯하고 보니
이런 모멸감이 없다. 큰언니한테 잘하라고 하면서 저는 왜 언니에게 대드는 것인지.
막내에게 전화해서 설명을 하고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못하고 언니에게 늦은 밤 전화를 한 것이다.
아무 이유도 모르는 언니에게는 화풀이할 생각 하면서 정작 막냇동생에게는 전화할 생각을 못하는 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동생들이 만만하면서도 어려워지는 부문도 있었다. 소소한 다툼이 있을 때면 동생들에게 따지는 것보다 먼저 큰언니에게 풀어놓으면 무던한 큰언니는 묵묵히 들어주고 그러다 보면 어느 결에 서로 보고 웃고는 했다.
내리던 눈은 그쳤는데 전화기선으로 전해지던 막내의 따지는 듯한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하영의 머릿속을 헤매었다.
내가 지들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내가 이 나이에 왜 훈계를 당해야 하는지 하영은 받아 들 일수가 없었다.
나도 언니인데 큰언니만 챙기며 잘하라고 대드니 배신감과 혼자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기숙언니는 선영언니보다 네 살이 더 많은 이웃집 언니였다. 자매가 다 같이 언니로 따르며 사이가 좋았는데 결혼하고 건축업을 하는 남편이 하영의 친정집을 재건축을 맡아하면서 부실공사에 터무니없는 공사대금으로 친정엄마를 힘들게 한 일이 있어 사이가 멀어졌었다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기숙언니가 칠순생일이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하영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동안에도 하영은 기숙언니와 간간이 연락은 하고 있었다. 좁은 동네서 마주치면 외면하는 게 더 불편했고
그게 그 언니의 잘못이 아니고 따지면 제대로 못 지킨 우리의 잘못이라는 생각이었다. 지나서 한 생각이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이십 년도 넘은 일이다.
이제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정다웠던 이웃언니다.
기숙언니가 지인들을 불러 식사하는 자리에 하영을 초대해서 하영은 얼마간의 축하금을 전해주고 함께 식사를 하고 왔었다.
그때 함께했던 지인이 막내에게 전했었나 보았다.
막내는 불같이 화를 내며 둘째 언니 하영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집을 재건축할 때 막내는 결혼 전이었고
막내는 그 일을 겪고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쩌라고 저는 저고 나는 나의 관계가 있는데
그런다고 언니에게 그렇게 대들고 지랄을 떨고 큰언니에게 잘하라고 훈계를 하다니.
날이 밝아 혹시 막내가 화해의 전화라도 올까 기다렸지만 기척이 없다.
하영이 자신이 먼저 전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언니인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더해진다.
그래 내가 너무 잘해주니 만만하구나 싶다.
선영언니에게 문자를 띄웠다.
ㅡ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난리를 부리는지
이제 나도 안 볼 거야 ㅡ
하영이 언니에게 하는 행동에는 설명이 없었다.
언니도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천천히 달래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었었다.
문자를 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시나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 말하기 싫었다. 온종일 선영언니의 부재중 전화가 여섯 통이었다. 하영은 문자로 답했다.
ㅡ언니야 건강해야 해, 아프지 마~~ㅡ
늦은 밤 뜬금없이 전화했을 때 선영은 이상기류를 감지했었다. 무언가 기분이 안 좋구나 하고
관심받기 좋아하는 둘째 하영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표현도 직설적이라 그때그때 받아주지 않으면 삐지는 데는 나이와는 무관했다
이른 아침에 선영은 둘째 하영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심사가 꼬였나 내버려 두려다 그래도 안 받으면 무슨 일 있나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던 차에 셋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하영이가 기숙언니 생일잔치 갔었다고 막내가 열받아
작은언니에게 한바탕 쏘아붙였다 했다고,
하영의 문자를 받고 우스웠다.
선영은 모르는 자매들 간의 일로 감정이 상하면
ㅡ언니야 행복 해야 해 ~~ 건강하고~~
매번 이런 식이다. 안 볼 거처럼 물결무늬 잔뜩 들어간 문자를 하고는 전화도 안 받고 잠수를 탄다.
감정이란 게 늙지도 않는다.
몸은 세월을 받아들이는데 감정의 기복은 여전하니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라고 언니에게 다들 이러나
나는 어디다 할꼬하고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
이번 잠수는 얼마나 갈까 그것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