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또 생각보다 짧았다.
시간이 많아지면 하고 싶은 걸, 알차게 다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살아온 지역사회, 익숙한 골목, 늘 보던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무난하게, 때로는 무기력하게 존재했다.
뇌 속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인 양, 그 안에서만 생각하고, 그 안에서만 움직였다.
하지만 문득, 이번 생에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우물 안에서만 살아도 괜찮을까?
내가 발 디딘 이 작은 세계가 진짜 전부일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만든 경계일까.
그래서 조금씩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처음엔 가까운 대도시부터.
그리고 과거에 잠깐씩 살았던 지역들을 다시금 돌아가봤다.
내가 알던 세상이 얼마나 좁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결국, 더 멀리 나가보고 싶어졌다.
해외에서의 삶은 모든 게 새로웠다.
낯선 언어, 낯선 표정, 낯선 얼굴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
나는 다시 처음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지금도 완전히 우물 밖으로 나왔다는 확신은 없다.
아마 평생, 또 다른 우물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든 경계 밖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아직은 미숙하고, 여전히 두렵지만, 능력껏이라도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또 한 번, 우물 밖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