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뭐라도 골똘히 쳐다본다.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활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더라.
그저 형태만 보일뿐 활자는 본래의 역할을 잃었다.
살다 보면 읽는 척을 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더라.
당장 서투른 행동이나 감정표현을 막기 위해서.
그 서투름의 결과물이 파국임은 인지되니까.
누구보다 절박하고 급박하게 뭐라도 읽는 척을 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파국에 대해 좀 더 숙고해보기 위해.
이제와 딴청 피우냐는 당신의 뭉뚝하면서도 서늘한 말은,
잠시만 입에 머금고 있어 달라.
나는 너무 절박한 상태니까.
물론 읽는 척하기가 통하든 안 통하든
그 날동안 글을 읽기란 글러먹었다.
여기저기 휘날리는 정신머리를 붙잡느라 그날은 까막눈일 거야.
다만 까막눈이더라도 당장 당신을 잃고 싶진 않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