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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너 Jul 13. 2024

바보 같은 짓

수강료라고 생각할 것

며칠 전에 아주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요즘 운동에 취미를 들여, 필라테스와 러닝을 하기 시작했는데, 문득 좀 비싸고 좋은 신발을 사고 싶었다. 그래서 한 브랜드의 매장에 갔다.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신어 보고 신중하게 고르는 동안, 마음에 드는 신발이 생겼다. 그런데, 내 발볼이 넓어, 그 신발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나는 작은 것 같았는데, 직원분께서 앞코를 만져보시더니 이게 맞는 거라고 했다. 그때 그냥 큰 사이즈도 봐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집에 와서 신어보니 역시 너무 작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신이 나서 성급하게 택도 떼버렸던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택배로 반품을 시키고 새 제품을 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안일했다. 반성하는 중.)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전화가 왔다.


고객님 택도 상자도 없어서 반품이 불가능하세요.

당시 나는 당황해서, 아 반품 안될까요? 소비자진흥원 어쩌고에서는 14일 이내로 가능하다고 하던데요?라고 했고, 담당자분께서는 일단 내부 회의를 해 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돈도 두배로 지불을 하다니.


한 시간 뒤에 전화가 다시 왔고, 그분은 CS팀장이시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그분과 말을 나누는데 내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진상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분은 프로페셔널하게, 택을 왜 떼셨는지, 상자는 어디 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셨고,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렇게 코치코치 내 잘못(?)을 되짚어 준 팀장님이 조금 미워졌다.

명백히 너무나 내 잘못이라 할 말을 잃은 나는 그럼 제가 반품시킨 것 택배로 보내주시겠어요? 하고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끊었다.


좀… 아니 많이 부끄러웠다.

왜 매장에서 사이즈 큰 거 달라는 말을 못 해서.

왜 내 발이 아프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직원분의 말을 믿어서

왜 택배로 처음 신발을 받았을 때 택을 생각 없이 떼었을까.

왜 빨리 신고 싶어서 다시 또 새 신발을 샀을까.


자책이 꼬리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즈음. 속상해서 친구와 그냥 그랬어. 나 왜 그랬지 하고 있을 무렵.


뉴스가 나왔다. 어떤 60대 남성의 차가 급발진을 해서 시청에 있는 사람 몇 명이 죽였다는 뉴스였다. 친구와 나는 할 말을 잊고 헐 어떡하냐 하고 있는데,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친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이 뉴스를 보고 나니까. 내가 했던 자책, 고민, 속상함은 저 진짜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사실 신발을 볼 때마다 좀 꼴 보기가 싫다. 내 실수를 되짚어주는 것 같아서. 근데 어쩌겠어. 내팽개치고 있는 것보다, 열심히 신고 신어서 뽕을 뽑아야지. 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면야. 그 십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 글을 적으며 자기 위로를 해 본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여행유튜버 원지님이 했던 말이다. 40만 원을 손해 봤다고 생각했을 때, 미련을 많이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을 살면서 나는 분명히 40만 원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다른 사람들 덕분에 누렸을 것이기 때문에, 빨리 잊고 넘어가려고 한다.


그래, 수업료라고 생각해야지. 인생 수업료.

수업 내용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무언가 이상하다, 애매하다고 생각하면, (신발을 고를 때) 잠시 멈추어서 생각해 보기. 그리고 행동하고 주장하기.

2. 소비를 할 때에는 내 생각보다 훨씬 신중하기

3. 일이 잘못됨을 빠르게 인지하기

4. 이만한 일임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다음번에는 좀 더 신중하고 알뜰한 소비를 하기를 바라면서… 자책은 여기까지…! 흑흑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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