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평평 - 글과 그림의 힘
일요일 1시가 넘어간 시각, 이대로 있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내일 꼼짝없이 다시 회사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버스를 무작정 타고 가다, 사당역이 보이길래 홀린 듯이 내려 또 홀린 듯이 4호선을 탔다. 어지러운 건물들을 피하듯 나는 중앙박물관으로 향한다.
넓고 쨍한 겨울 숲이 나를 맞아주면서 그 사이에 단단히 자리한 박물관이 반겨주었고 나는 거대한 그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사유의 방에 가야지 하고 가는데, 크게 걸려있는 포스터. 그 속으로 들어가니. 영조의 기록들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불안하게 붕붕 떠있던 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낮은 조도. 오래된 기록들. 오래된 기록들을 보다 보면 지금 나의 고민은 아주 작은 먼지처럼 여겨진다. 내 나이의 수백 배의 삶을 산 기록들은 나에게 자신의 시간들을 알려주면서 시공간을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박물관을 자주 갈 수 있다는 것은
내가 학교에서 그저 외우기만 했던 죽은 지식을 생생하게 다시 마주하고, 또다시 찾아보게 하는 것.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다시 내가 앎의 기회를 얻는다.
전시에서는 영조는 기록을 좋아하고, 시와 그림을 통해 백성들에게, 신하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즐겨하였다고 한다.
갑자기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 아직 정하지 못한 올해의 목표를 기록으로 정하기로 했다.
무엇을 하든, 어떠한 생각을 하든, 어떤 행위를 하든, 무슨 경험을 하든. 기록을 해보기로 하였다.
그것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에서 내가 알아차린 점들을 기록해 보도록 하겠다.
나는 공간학적 디자인 측면에서 이 전시를 보았다.
1. 이전에도 느꼈듯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최하는 전시들은 조도가 매우 낮다. 나는 이 분위기를 좋아한다. 온전히 작품들 유물들을 마주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으며 내가 편안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유니버설 디자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 환경은 눈이 좋지 않은 어른들에게는 관람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항상 이곳을 오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어르신들은 이 작품들의 해설을 읽기 어려워하시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2. 설명이 간결하고 우아하다. 이전에 박물관에 가기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설명들이 난해하고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었던 점이 있다. 오늘 문득 이 설명들을 찬찬히 읽다가, 어린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듯한 다정한 글들을 보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 점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해가 쉽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려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3. 전시 관람의 순서. 현대의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 공간을 이용할 때 느끼는 동선 또한 이에 따라서 정해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걷는데, 나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이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병풍을 보는데, 오른쪽부터 1번 2번으로 이어져 병풍을 문득 보니, 과거의 기록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문득 이상함을 느꼈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기록의 특성에 따라 동선을 기획한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 전시의 특성을 전공을 살려 3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 기록의 시작이 매우 마음에 드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