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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09. 2023

하얀패모 이야기 17-결벽증

결벽증

<결벽증>

녀석을 잘 알기 전부터 녀석이 참 까다롭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남학생이면서도 절대로 입에 음식 넣고 말하지 않고 다리 벌리고 앉지 않고 등등. 하지만 녀석을 알아갈수록 오만가지에 까다롭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녀석은 부에 대한 결벽증이 심했다. 가끔은 그게 나 때문인가 도 싶어 걱정도 되었지만 그건 대부분 녀석의 신앙 양심 때문일 때가 많았다. 동생이 철없이 부모님께 많이 요구하는 것을 보면 화를 참지 못했고 자신의 부모님들이 기복신앙으로 치우칠 까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늘 아버지께 화내고 나왔다.”

“왜?”

“차를 바꾸셨지 뭐야. 내가 반대했는데.”

“바꾸실 필요가 있으셨겠지.”

“바꾸실 필요가 전혀 없는 차로 바꾸셨으니까 그렇지.”

“무슨 말인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이 뭐 재벌이냐? 장사하는 집 아니냐?”

“장사는 장산데...... 남들은 그 정도면 그걸 사업이라고 하거든?”

“암튼 옷 장사지 뭐야. 그런데 왜 그랜저가 필요하냐고. 용달차면 모르겠다. 완전 과시용이지 뭐.”

“야 그랜저는 뭐 타는 사람 정해졌냐? 타고 싶고 능력 있으면 타는 거지?”

“낭비야 낭비.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녀석은 정말 그 돈을 쓸데가 있는데 아버지가 차를 사시는 바람에 못 쓴 녀석처럼 씩씩댔다. 보다 못해 내가 한 마디 했다. 

“어른들 일에 참견하는 거 아니다.”

녀석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이 대들었다. 

“그 차, 유지하는데 한 달에 얼마가 드는 줄 아냐?”

“얼마나 드는데?”

“많이 타지 않고 거의 모셔 둬도 한 달에 한 40만 원은 들 거다.”

“그렇게 많이 들어? 그런데 왜 그거 사셨어?”

보수적 태도로 녀석의 아버지를 사수하던 나의 짧은 경제관념은 그 거액을 듣는 순간 흔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화가 나지. 그 돈으로 매 달 고아원에 보내든가.”

녀석은 계속 북북 화를 내고 있었다. 이제는 버티기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렇구나...... 야. 그래도 부모님을 그런 속물 취급하면 되냐. 과시용이 아니라 안전한 차를 사신 거라고 생각해야지.”

“그럼 다른 차 타는 사람들은 목숨 내놓고 타는 거라던?”

녀석은 오늘 마치 그동안 부모님께 쌓였던 불만을 다 풀어내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몰라도 사업에 필요할 수 도 있지. 네가 뭐라고 그렇게 화를 내냐. 정 잘못하신 거면 설교 말씀 듣다가 깨닫게 되시겠지.”

“난 우리 부모님 교회에 별 기대 안 해. 그 교회에서도 우리 부모님 함부로 못하거든. 교회도 이젠 돈만 있으면 다 믿음 좋대. 썩었지. 지난번에 우리 집이 그 교회 신문 1면에 났잖아.”

“왜?”

“그 교회 나가서 축복받은 집으로 탐방 기사 나갔어.”

“축복이 눈에 보이나? 어떤 축복을 받았기에 신문에 나지?”

“한 마디로 그 교회 나가서 살림이 폈다는 거지.”

“ㅋㅋㅋ. 그 교회 나가서 살림이 펴? 너희 교회 정도면 웬만히 편 살림으론 신문까지 못 날 테니 꽤 부자란 소리네? 좋겠네, ㅋㅋㅋ.”

“넌 웃을 수나 있지. 난 창피해 죽것다.”

“기복 신앙이 뭐 어제오늘 일이냐.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문젠 거지. 너희 부모님도 그 피해자라고 생각해야지.”

“하나님 앞에서 그 핑계가 통하겠냐? 그 한심한 기복주의 신앙과 철저히 싸워야 한다고.”

“그러게. 그게 부모님처럼 가까운 분들의 문제일 때는 좀 마음이 더 힘들겠네......”

“우리 집에서는 이런 말하면 무슨 머리에 뿔난 놈 취급한다. 너 잘났다고 해.”

“네가 그런 식으로 골 내니까 그렇지. 평소 부모님께 살갑게 하지도 못하는 놈이 뭘 잘했다고 잔소릴 하냐.”

“넌 이해 못 한다. 너희 집하 곤 완전히 다르다고.”

“너도 잘한 거 없어. 대화를 해야지.”

녀석을 너무 몰아붙인 건지 녀석이 말이 없었다. 

“.......”

“차근차근 기도 해야지.”

“한 달간 아버지랑 말 안 한다고 하고 나왔어.”

“나라도 내 아들이 너 같으면 밉겠다.”

“나도 알아. 나 같으면 죽이고 싶을 거야. 어딜 감히 자식이 부모한테...... 그런 놈은 죽여야지. 그렇지만 어떻게? 속상한데......”

녀석은 답답해했다. 이럴 땐 답은 없었다. 그냥 생각을 잠깐 돌려놓는 수밖에.

“야 탐방기니까 사진도 실렸겠네?”

“당연하지. 그것도 짜증 나서 원. 자는데 막 깨워 가지고 무슨 사진을 찍으라고 난리 치시잖아.”

“오 그래도 순순히 찍긴 찍었네?”

녀석이 당시를 기억하며 재밌다 는 듯 웃었다. 

“풋. 솔직히 순순히 는 아니지. 처음엔 아들 없다고 하고 그냥 셋이 찍으라고 고집 피우다가 세수도 안 하고 잔뜩 부은 얼굴로 눈도 안 뜨고 찍었다. ㅋㅋㅋ. 교회에서 창피해서 자랑도 못하실 거야.”

“세수했다고 뭐가 달랐을까?”

“당연하지!”

“지금은 세수 한 거냐? 안 한 거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한 거지. 면도도 했는데 안 보이냐?”

“근데 왜 그렇게 엄청 부었냐?”

“내가? 어디?”

“코! 하하하! 넌 코가 맨날 부었잖아!”
 “이 놈이! 당장 회개해! 신체 비하 발언이 얼마나 큰 죄인 줄 모르냐?”

“비하는 무슨. 그냥 주님의 솜씨에 감탄한 것뿐인데. 주님, 이런 큰 코를 창조하실 땐 어떤 기분 이셨을 지요? ㅋㅋㅋ.”

“어휴-이걸 그냥!”

다음 시를 보면 부에 대한 녀석의 마음이 보인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하늘, 같은 태양아래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고

누구는 기뻐하고, 누구는 괴로워하고


왜, 이래야 하는 거야?


우리의 삶은 불평등의 연속

똑같은 태양빛을 받으며

같은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왜 달라야 하지?


내가 요단강을 건너갈 때까지

그때까지 나는

왜 그런지를 모를 것이다. 

9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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