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안
<두 집안>
이쯤에서 녀석과 나의 가족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두 괴짜들이 자란 환경은 어떤 것일지 궁금할 것 같다. 녀석과 내가 다르면서 닮았 듯 우리의 식구들도 그랬다. 가족 수는 부모님과 남매로 모두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구성원들로 서로 같았고 살아온 모습은 참 달랐다. 먼저 우리 집은 가족애가 남다른 집이었다. 항상 둘 이상이 모이면 수다건 토론이건 벌어지고 농담도 수시로 오가는 집인데 반해 녀석의 집은 식구가 거의 모이기도 힘들고 밥도 제각각 자기 시간에 맞게 먹었다. 내겐 우리 가족이 우선이고 식구들의 의견이 아주 중요한 반면에 녀석은 말 그대로 지 인생은 지꺼였다. 녀석에게 부모님은 자신을 낳아주신 ‘속 썪이면 안 되는 어르신들’이고 여동생은 그저 어리기만 하고 ‘생각이 모자란’, 언젠가 시집을 가서 제 가정을 꾸리고 거의 남이 될 존재 정도였고 나에게서 오빠란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주고 가치관을 나눌 든든한 존재였다. 두 집안의 신앙의 색깔도 달랐다. 우리 집에선 기독교 장로회의 분위기가 강해서 사회비판이나 목회자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고 심지어 하나님께도 끝까지 ‘따지고(?)’드는 반면에 녀석의 집은 목회자의 권위나 교리가 절대적인 집안이었다. 경제적인 차이도 컸다. 우리 집은 매 분기 등록금조차 걱정해야 하는 집이었고 녀석의 집은 뭐 재벌은 아니어도 사업 수완이 좋으신 아버지의 성공으로 많이 넉넉한 편이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은 두 집안의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 때문이었다. 바로 방목형 교육관. 친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님은 나의 선택권을 침해하신 적이 없었다. 무엇이든 내가 결정하게 하셨고 결정하면 전적으로 지원만 해주셨다. 녀석의 집안도 그랬는데 그 이유가 나랑은 조금 달랐다. 녀석이 워낙 일찍 철든 행동을 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꾸려가고 있었는 데다 맞벌이로 녀석의 부모님들께서 바쁘신 탓에 대화를 통한 영향력을 이미 잃으신 상태였기 때문에 녀석의 부모님은 그저 녀석이 나쁜 일만 안 하면 녀석의 일에 참견하시기가 어려우신 상태였다. 나는 녀석의 그런 태도를 늘 지적했지만 녀석은 우리 집을 부러워하면서도 언젠간 나도 가족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살아가야 한다나. 나는 그런 녀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찌 되었든 녀석과 나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신뢰해 주시는 참 고마운 분들이었다. 나는 녀석의 부모님이나 나의 부모님들이 흔히 연속극에 나오는 속물들이 아니라는 점에 지금도 감사하고 산다. 녀석이나 나나 우리가 누구를 선택하던 부모님께서 반대하시지 않을 거란 믿음은 지금도 건재하다. 아무튼 우리의 수많은 문화 차이들은 신앙과 같은 교육관이라는 두 집안의 공통점으로 서로 부딪혀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 녀석의 부모님은 생전 처음 아들이 여학생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때문에 내가 신기하셨고 우리 부모님은 딸이 또 무슨 모험을 하려나 보다 하셨고 내가 통이 커서 좀처럼 여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남학생들하고 더 잘 어울린다고 믿고 계셨기에 녀석을 내 다른 친구들과 별반 다르게 여기지 않으셨다. 따라서 녀석은 부모님께 나라는 친구와 자주 만날 거라고 ‘통보’ 하면 되었고 나는 그냥 그렇게 ‘이야기’ 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