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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10. 2023

하얀패모 이야기 14-사막으로

사막으로

 <사막으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삼월 초가 되었다. 내가 대원 외고에 떨어져 우리는 서로 다른 학교를 가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녀석은 대원 외고에 관심도 없다가 내가 원서를 쓰니까 함께 학교 가려고 시험을 쳐서 붙은 거라 했다. 제길! 아무튼 우리는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긴장하며 한 편으로는 곧 닥칠 긴 기다림의 이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녀석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기 원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던 고교생활에서 자유란 없었고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으니 마음이 참 착잡했다. 걱정과 두려움도 컸고 생각을 나눌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삼 년 후에나 서로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녀석도 나도 했다. 이럴 걸 알면서도 온갖 계약은 무엇이며 왜 친구 하기로 했는지 한심해지기도 했다. 녀석과는 함께 자라며 새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라서 느닷없이 팔자에도 없는 동지를 가지게 되니 그런 종류의 우정을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이런 종류의 이별을 하는 법도 몰라 참 애매했다. 그런데 녀석이 앞으로 자주 만나지 못할 것 같다며 시를 한 편 지어 주었다. 그 이름하여 "사막의 시". 녀석이 내게 처음 지어준 시 이자 녀석의 많은 문학 작품 중 백미로 꼽는다. 그 뒤로도 녀석은 내게 많은 글을 주었지만 이만한 수작은 다시 쓰지 못했다. 그래서 이 시는 내가 지금도 무척 아끼는 시다. 다음은 ‘사막의 시’가 실린 녀석의 편지 전문이다. 


To OO. 

할 이야기는 산더미 같은데 시간과 종이와 글재주가 없어서 특이한 방법으로 글 쓴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한 캐러밴이 있었다. 그는 고행을 떠난 후 길도 없는 사막을 헤매며 14년간 방황을 했다. 15년째 되던 해 그는 OO이라는 사막을 가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길(하나님-해설자 주)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곧 그는 외로워졌다. 그 길에 가는 사람들 중에는 이방인만 있을 뿐 자신의 동포(뜻이 맞는 친구-해설자 주)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여행이 만으로 16년을 접어들던 해에 그는 ‘3-2(당시 우리 반)’라는 오아시스에 당도하게 됐다. 그곳에서 얼마간 지내던 그는 신께 감사드렸다. 그곳에 모인 62명의 캐러밴 중 자신의 동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그 동포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향과 우리들의 공동 목적지(천국-해설자 주)에 관한 이야기. 편리함 만을 추구하는 많은 불쌍한 캐러밴에 관한 이야기. 많은 부분에서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한다. 그 캐러밴은 OO이라는 사막으로, 그 동포는 OO라는 사막으로. 그들이 어찌 될지는 오직 신만이 아신다. 그 캐러밴은 그 동포와 헤어지기 전 날에 많은 것을 생각했다. 제발 무사히 목적지에서 만났으면. 중간에 길을 잃지는 않겠지. 그가 그 사막의 대상들 중 선두에 서서 간다면, 그 동포가 보다 많은 동포를 만났으면... 바람은 샐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신께 맡기고 ‘인 샬라’ (신의 뜻으로)를 중얼거리며 너무 많은 모래폭풍으로 그의 길이 희미한 OO라는 사막을 향해 낙타를 몰아간다. 


위의 글은 나의 자서전 같은 것이다. 헛소리로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네가 준 기타 교본은 매우 고맙다. 유용이 쓸 것 같다. 조금 어려운 것 같지만 나의 신조 ‘하면 된다’를 가지고 도전해 보겠어. 기대해 보길 바란다. 언젠가 네 앞에서 기타를 제법 치는 나의 모습을.


빌려 준 기타는 잘 썼다. 연락이 닿으면 앞으로도 가끔 빌려주었으면 한다. 

직접 배달하는 글로는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글씨가 엉망이구나. 이상히 도 오늘은 글을 꾸미고 싶지도 않고 내 필체 그대로 쓰고 싶어 썼다. 이해해 주기 바란다. 게다가 볼펜도 말을 안 듣는구나. 

네가 적어 보내준 충고 고맙다. 내가 태어나 그런 충고를 들은 것은 처음 같구나. 나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어제는 굉장히 심심한 하루였다. 혼자 4시간 동안 청계천과 종로를 돌아다녔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공부한다는 사람 방해는 할 수 없어서 참고 다녔지. 나중(몇 년 뒤가 될는지 모르지만)이라도 한 번 같이 나갔으면 좋겠다. 시내엔 이야기해 줄 것이 많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런지 나는 시내만 나가면 지독한 수다쟁이가 된단다. 

...... 중략

할 이야기는 많은데 종이가 다 끝나간다. 아쉽구나. 특히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못 써서 더욱 그래. 빽빽한 고등학교 생활 중에 가끔 머리도 식히는 겸해서 만나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어려우면 가끔 신앙이나 여러 가지에 관한 글을 좀 보내 다오. 이직 내가 만난 동포는 더 하나뿐이다. 그래서 내가 이국 풍습에 젖지 않도록 가끔 만나 교제를 나눌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하나님과 너희 남매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너희 남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샘이 나서 집에서 난리를 친 끝에 결국 남매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졌단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1년 전에 비하면 혁명에 가까운 변화이다. 물론 내 동생도 사상 면에서는 아직 이방인이야. 막판이라 이런 말도 감히 써 본다. 네가 어찌 생각할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네가 내 동생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화될 수는 없지만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웃기는 소리지. 그래. 나는 가끔 별 웃기지도 않는 상상을 자주 한단다. 하여간에 너희 남매가 앞으로도 멋있는 남매가 되게 해달라고 주님께 빌어 줄게. 

너의 글 중 p.s. 3번의 글은 나를 자극시켰다. 기억나니? 진짜 여성다운 문체 왈가왈부 한 글. 그 글은 내 헌법 3조 1항 ‘독신주의’에 위배되는 글이란다. 노하지는 않겠어. 잘 몰랐을 테니. 그러나 그런 섭섭한 소리는 다시 안 하길 바란다. 

한 가지 더. 몇 번씩이나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너의 그 ‘하오체’는 이젠 다른 문체보다 반갑다. 네 문체에 대해 회의를 갖지 말길 바란다. 내 문체 중 지금 쓰는 이 문체 다음으로 많이 쓰게 된 것이 너의 그 ‘하오체’ 란다. (그 ‘하오체’가 글쓰기 편하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너의 글에서 신앙에 관한 글이 많은데 반해 나의 글은 너무나 인간적이구나. 이럴 때마다 내 믿음의 급수가 너보다 몇 단계 아래인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 자라 염려는 없다. 조심해라. 나는 언제나 신앙 면에서 너를 추월하려고 노력 중이니. 

글의 길이마저 너를 닮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4장까지 가는구나. 

내 예상에 금요 모임은 힘들 것 같다. 그것이 지금 나에겐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기도는 하겠지만 많은 친구들의 신앙 유지가 심히 걱정된다. 

네가 첫 번째 글에서 제기한 문제인데, 너희 부모님께 지금 말씀드렸니? 사소한 차이로 친구 하나 사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적은 처음이다. 그러나 네 말대로 부모님께 대한 순종을 가장 명심하고 모든 것을 행해라. 나는 그런 것은 못 느끼지만 가정은 친구보다 중하다고 하더라. 

우리의 우정이 주님 안에서 영원하기를. 

나는 왜 이럴까? 애껏 쓰고 또 잡스러운 소리야. 야! (한숨과 비슷한 계통의 소리) 난 왜 이렇게 글이 안 될까? 

내 앞에서 맞춤법 이야기는 다신 하지 말아라. 네가 빼뽀네보다 맞춤법이 못하다면 나는 빼뽀네 제자다. 

지금은 네 글 덕분에 신앙적인 문제는 대강 해결된 것 같다. 고맙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아직 있다. 교만에 대한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 기도해 주길 바란다. 

이젠 진짜 마치는구나. 정말로 너와의 대화 시간들은 즐거웠다. 가끔 전화나 편지를 써도 될 런지…... 나한테 오는 것이야 문제없지만. 이럴 때 나도 네가 나의 남자 친구나 여동생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고 만사가 형통하며 주님을 사랑하길 바란다. 

여호와의 평강이 너와 너희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내가 이국에서 만난 최초의 동포 OO 에게 

다시 이국 땅을 홀로 걸어야 하는 OO이가 

-뒤편도 읽어 볼 것


[사막의 시]


오! 친애하는 형제여!

그대의 낙타들이 다른 머나먼 사막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을 보오.

그대와 즐거웠던 때들을 회상하니 낙타들의 모습이 

물에 빠짐 같이 아른거리오.


오! 사하라여!

그대의 모래가 내 눈을 그리 만들었는가?

그대의 신기루의 장난인가?

어찌 낙타들의 모습이 물속에서 아른거리는가?


오! 아름다운 형제여!

이제 마지막 낙타에 안장을 올리고

떠나시오.

그대의 길은 험할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목적지에 도달할 거요.

당신의 옆구리에 찬 그 칼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무적이 될 것이오.

그대의 원수들이 그대 앞에 서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형제여!

그 칼보다 그대 손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 하시오.

그러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그대의 길을

예비하실 것이오.


그 말씀에 기록된 그리스도와 동행하시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에 그분 없이는

당신의 목적지는 못하는 신기루일 뿐이요.

오! 선한 형제여!

헤어지나 잊지 말아 주시오.

황량한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에서

뜻을 같이했던 나를.


오! 신이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와 나 중에 누가 먼저 아버지의 새 예루살렘에 

도달할는지 모르겠소.

그러나 내가 먼저 간다면 성문 앞에서 소고와 비파로

그대와 그대가 만날 우리 동포들을 환영하겠소.

또한 여호와께서 그대에게 상주시는 곳에 가 

열렬한 박수를 치겠소. 그리고는 넓고 아름다울 것을 

계획 중인 나의 집을 보여 드리리다. 그곳에서 많은 우리의 

동포들과 같이 주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대와 함께

나의 여행 이야기를 하리다.


오! 아름다운 사막의 용사여!

이기시오! 승리하시오!

또 다른 오아시스에서 만날지도 모르겠소.

그때 만나면 축배를 듭시다.

오! 형제 같던 자매여, 여호와 샬롬!


- 그대의 동료 사하라의 한 캐러밴으로부터-

1989년 3월 1일

그대의 동료였고 친구였던, 또한 지금도 친구이고 앞으로도 친구일 사하라의 한 캐러밴으로부터.


녀석이 ‘사막’이라 표현한 느낌을 선생을 하면서 뼛속 깊이 느끼곤 한다. 아이들 속에서 나는 가끔 내가 사막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땐 녀석을 비롯한 나의 훌륭한 여자 친구들 덕에 이런 감상에 젖을 기회조차 없었다. 아무튼 이 거창한 이별 시는 입학 몇 달 뒤부터 함께 같은 독서실을 다니며 매일 하교 이후 함께 만나 같이 공부하는 바람에 그 쓸모가 좀 우습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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