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1
<전화 1>
봄 방학 기간 동안 우리는 자주 만났다. 그리고 매 주일 오후 서로 각자의 교회에서 돌아왔을 시간이 되면 녀석은 꼭 전화를 했다. 대화 내용은 약속대로 늘 심각했다. 우리가 가진 믿음에 대한 이야기, 오늘 들은 설교 요약정리 밑 비판, 우리 교육 문화에 대한 갈등들, 그림이건 글이건 어떤 것에 대한 창작의 열망들, 장래의 꿈들……늘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당시 공중전화 한 통화에 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늘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그걸 다 썼다. 그 오백 원짜리 동전은 시외 전화 하는 사람들만 쓰던 때였으니……항상 조용해 보이던 녀석은 나와 그렇게 떠든 다는 사실을 무척 신기하고 기쁘게 생각했다. 식구들과 언제나 수다를 떠는 나에게는 긴 수다가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평소 과묵해 보이던 녀석에게는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나 보다. 허긴 나도 하루 종일 누구와 떠들고 들어가서 전화로 또 그렇게 떠들기는 좀 많은 양이었지만. 이렇게 몇 달 긴긴 전화를 나누며 녀석과 나의 우정은 빠르게 돈독해졌다. 녀석은 희한하게도 나의 취학 전 동네 친구들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있었고 내게 항상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했다. 녀석이나 나나 그렇게 떠들어 대면서도 늘 시간이 모자라 우리가 함께 밤을 지새우며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애석해했다.
“야, 오늘도 벌써 두 시간이나 떠들었네?”
“어 그래? 별 얘기도 안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떠들어 보긴 처음이다.”
“난 원래 이런데.”
“거 말이라도 좀. 암튼 너랑 떠들면 꽤 재미있다. 말이 통하는 친구란 이런 거구나~ 한다 요즘. 아-. 넌 모른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사막을 혼자 걷는 기분이었다고. ”
“사막은 무슨. 남학생들하고 잘도 놀더구먼.”
“그 자식들은 그냥 재미있게 노는 거고. 철들이 아직 안 들었잖아.”
“잘난 체하기는.”
“암튼 난 요즘 너랑 이렇게 떠들면서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그렇군.”
“너는 안 그러냐고?”
“난 원래 숨 막힌 적이 없어서 숨통이 트일 필요가 없거든.”
“그럼 내가 널 너무 많이 붙잡고 있나?”
“붙잡다니. 친구 사이에.”
“그렇지? 괜찮지?”
“이런 쓸데없는 얘기만 빼면. 근데 너 집에 안 들어가냐?”
“여태 같이 떠들다가 웬 배신?”
“그만 들어가라고.”
“알았어. 하지만 언젠가 너랑 밤새고 끝도 없이 떠들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성전환 할 거냐? 미안하지만 아무리 우정이 중해도 내 쪽에선 그럴 일은 없다.”
“꼭 말을 해도 끔찍하게. 성전환 안 해도 그럴 수도 있지 뭐.”
“맞아. 천국 가면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잘 살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천국에서...... 우리 거기서 꼭 만날 수 있겠지? 그럼 그때 정말 다른 사람들 눈치 안 보고 실컷 떠들어 보자.”
“나야 그렇지만 넌 잘 모르겠다. 그러니 똑바로 잘 살아라.”
“알았어. 나도 꼭 천국 갈 거거든?”
“알았다. 그럼 이제 들어가라.”
“그래, 일주일 동안 잘 지내고 다음 주도 이때쯤 전화한다. 건강하고.”
“오냐. 너도 잘 지내라.”
나는 녀석과 이렇게 친구 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