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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10. 2023

하얀패모 이야기 13-종전협정

종전협정


종전협정



by하얀패모Apr 09. 2023


<종전협정>

며칠 후 우린 우리 둘의 인생에서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자세한 상황들을 합의했다. 선생님을 뵙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녀석이 물었다. 

“얼마나 자주 만날까?”

“고등학교 갔는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있겠어?”

“그래도 주말은 되지 않을까?”

“주말도 바쁠걸?”

“그럼 아예 못 만나나?”

“전화. 네가 길을 낸.”

“그래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교회 다녀오면 어차피 도서관 안 가냐?”

“그럼 한 달에 한 번?”

“으응...... 그것도 좋지......”

녀석이 수긍하는 듯하더니 어렵사리 또 물었다. 

“한 달에 두 번은 안 될까?”

“왜?”

“너는 몰라도 나한텐 네 녀석과 수다가 삶에서 꽤 중요하거든. 앞으로 만날 생활도 끔찍한데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 버티지 않겠냐?”

“너희 학교는 주말에도 보충 수업 있을걸?”

“그런 건 걱정 말고. 그럼 두 번이다~.”

나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녀석의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재차 그걸 확인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이성 친구가 아니야. 동의하지?”

“물론이다. 너 아니라 그 누구와도 나에게 이성 친구일 수는 없어.”

“맞다. 너도 독신주의자였지?”

“내 헌법 1조 3항이다.”

“좋아. 훌륭해.”

“그럼 우린 무슨 사이라고 할까?”

“생각이 같은 걸 동지라 하잖나? 난 형제자매 이런 호칭이 익숙지 않아서. 우리 오빠한테 ‘형제님’ 하진 않는데 좀 웃겨 보이기도 하거든.”

“동감. 좋다. 동지. 

이렇게 호칭을 정한 것 외에도 우리는 만나면 역사, 사회, 종교적 토론을 할 것이며(우린 둘 다 수학과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연락은 어떻게 몇 번 할 수 있고 함께 앉을 때는 둘의 가방을 늘 사이에 놓을 것이며 등등에 합의하여 철저한 계약 절차를 끝내고 보수적인 것으로 치면 전교에서 으뜸일 우린 드디어 꿈에서조차, 서로의 팔자에도 없던 요상한 동지가 되었다. 전쟁과 휴전으로 반복되던 지난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종전 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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