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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09. 2023

하얀패모 이야기 30-신사

신사

 <신사>

영화는 사실이 아니라던 녀석이 실상 가장 흠모하던 남자의 모습은 영화 ‘애수’에 나오는 ‘로이’라는 이름의 한 영국 장교다. 이 장교는 2차 대전 때 한 발레리나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는 곧 출병하게 되고 후방에서 그의 편지를 기다리던 발레리나는 그의 어머니를 만나는 날 그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된다. 전쟁 중 생활고로 그녀는 매춘부가 되는데 어느 날 그녀가 호객을 하던 중 꿈에 그리던 자신의 로이를 만난다. 로이는 그녀의 직업을 모른 채 자신을 마중 나와 준 것으로 알고 기뻐하며 고향으로 가 둘은 곧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한다. 하지만 로이가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 줄수록 그녀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워털루 다리 위에서 마주 오는 차에 달려들어 자살을 한다. 그 영화에서 로버트 테일러는 정말 훌륭한 신사역을 멋지게 소화했다. 정말 신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확신에 차 있고 준비되어 있고 상대에 몰입하면서도 마치 커다란 산처럼 언제나 침착하다. 결혼 준비를 함께 하러 다니다가 상대를 속인 것이 미안하고 불안한 그녀가 로이에게 묻는다. ‘로이, 우리가 정말 맞는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녀의 로이가 대답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일을 이렇게 확신한 적이 없다오.’

감히 로버트 테일러가 소화한 그 멋진 캐릭터와 녀석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녀석은 많은 부분 신사가 가져야 할 덕목을 가진 게 확실하다. 녀석은 내게 오기 전 혼자 여성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고 그것과 비교해 다시 나를 연구했고 관찰했다. 우선은 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점점 지가 평생을 걸어 볼지 짝으로. 심지어 나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내게 다가오기 전 즉 우리에게 친밀감(친밀감은 아주 빨리 콩깍지로 전환된다)이 개입되기 전 녀석은 멀리서 먼저 나의 장단점을 파악했고 나의 단점 중에서 지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할 부분을 가려보며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 부분이 평생 변하지 않을 상황을 가정해서 지가 감당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고민한 다음 지 마음이 그 고민을 이겼을 때 내게 지 삶을 헌신할 결심을 하고 내게 왔다. 그러기에 녀석은 확신에 차 있었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흔들리지 않았다. 나의 미숙함이 드러날 때도 녀석은 당황하지 않고 나를 감싸고 받아주었다. 지가 이미 알고 있는 미숙함이었기에. 그리고 새로 알게 되는 나의 못난 점이 있더라도 그냥 받아 안기로 마음먹었기에 녀석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녀석에게 사귐은 정말 진지한 문제였고 여학생과 함께 놀아보려는 속셈 따윈 없었다. 요즘에는 이런 신사가 드물다. 남자친구들이나 남편들은 끊임없이 더 나은 여성을 찾아 주변을 흘깃대고 자신의 여자에게 불만을 갖는다. 살면서 수 없이 자신의 선택을 불신하고 흔들리고 심지어 저주한다. 이런 사귐에서 여성은 한없이 불안하고 나약해지고 얼이 빠지고 자존감을 잃고 정서적으로 방황하고 원래보다 더 많은 실수를 범한다. 상황이 이와 같은데도 아담들은 여전히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전진하는,‘남성’ 에게 부여된 경이로운 ‘신사’의 작위를 사과 한 알과 바꿔 먹은 죄를 떨치지 못하고 여전히 나약하고 확신하지 못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종래에는 핑계를 댄다. 물론 나는 십 대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결심하고 이성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고민이 없는 사귐 또한 반대한다. 다시 말하건대 만일 누구도 녀석과 같은 고민 없이 연애를 하고 싶다면 그 욕구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시 그냥 재미로 잠깐 만나려는 것은 아닌지? 한 순간 단순히 이성과의 친밀감의 기분에 한껏 잠겨보고 싶은 충동에서는 아닌지? 그런 남자는 사귐에 대한 고민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 그리고 그런 것을 기대하고 사귐을 시작하는 여성은 없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신사를 원한다. 그가 비록 백마 탄 왕자가 아닐지라도, 재벌에 킹카가 아니더라도. 아니, 그런 걸 현실에서 쫒는 여성일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신을 향한 확신에 찬 한 신사를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조국의 아들들이여! 부디 이 땅의 딸들의 신사가 되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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