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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09. 2023

하얀패모 이야기 31-닮음 2

닮음 2

 <닮음 2>

녀석의 계약 위반성 발언은 점점 과감해져서 모든 것을 우리가 이성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갖다 붙여댔다. 

“너도 인정하다시피 우린 보통 친구가 아닌 거 같아. 우린 별게 다 닮았잖아. 이렇게 손바닥을 뒤로 젖히면 봐 너도 여기 쏙 들어가지? 이런 사람이 별로 없거든? 그리고 엄지손가락 힘줘봐. 그렇지. 뒤로 많이 젖혀지지?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전에 학원 강사도 우리 보고 물었지? 남매냐고? 남들 눈에도 우리가 닮은 게 보이는 거야.”

녀석은 우리는 이제 우정이라는 단어가 부족하다며 내게 동의를 구하기 위해 갖은 억지를 썼다. 그런 것이 내게 통할 리 없었다. 학생이 무슨. 게다가 전교생이 다 아는 독신주의자들이? 내겐 녀석과의 우정보다도 더 강한 명분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그건 내 얼굴이 평범해서다. 누구랑 같이 다니면 꼭 그런 소릴 듣더라고. 난 OO(내 단짝 여자 친구)하고는 쌍둥이 같다는 소리도 듣는 걸?”

“정말? 웃기네. 누가 그래? 아주 눈들이 삐었다. 너네가 뭐가 닮아 닮기를?”

“남들이 그런다고~”

“어유~그래. 잘났다. 누가 니들 단짝 아니랄까 봐?”

녀석이 마음을 먹고 그 문제를 이제 정의하자고 들면 하루 종일도 실랑이할 수 있기에 나는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너 닮으면 좋겠냐?”

“왜? 내가 이래 봬도 어디서 떨어지는 외모는 아니다.”

“너처럼 털 많이 나면 나도 면도 해야잖아. 끔찍하다.”

“어유, 또 새냐? 우리 얘기할 땐 좀 진지해질 수 없냐?”

“ㅋㅋㅋ. 원시인하고 어떻게 진지해져?”

“됐어. 알았다고. 이그~”

그러면 또 나는 머리 한 대 쥐어 박히지만 그렇게 해야 녀석이 도를 넘는 것을 막을 수 있기에 감수할 수 있었다. 솜털도 보이지 않던 내 손등에 듬성듬성 손목까지 이어져 털이 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우리가 닮지 않은, 아니 극명히 반대되는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녀석은 털이 많은 편이고 나는 팔이고 다리고 거의 털이 없는 거였다. 그런 내 손등에 털이라니...... 나는 이 사건을 한 원시인을 놀린 것에 대한 하늘의 거룩하신 심판이라 해석했고 녀석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닮는데요’라는 당시 유행했던 한 신발 광고를 흥얼대며 드디어 내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다며 내 약을 올려댔다. 

“덜 떨어진 자식! 털 난 거 닮는 게 좋으냐. 이담에 아주 온몸에 털 뒤집어쓴 여자 만나라!”

그간 내게 단련된 녀석도 지지 않았다. 

“걱정 마. 네가 털북숭이가 돼도 내가 데려올 거니까~”

“죽을래!”

“으악~ 살려줘~”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손등엔 그 많았던 털들이 하나도 없다. 녀석의 말이 사실일까? 아님 신께서 내 죄를 사하신 것일지도~. 여하 간에 녀석의 말처럼 내가 털북숭이가 되지 않은 건 정말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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