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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09. 2023

하얀패모 이야기 33-외교 유린 정책

외교 유린 정책

 <외교 유린 정책>

녀석의 나에 대한 주권 침탈 야욕은 필연적으로 나의 외교권 유린 정책을 낳았다. 우리가 만날 때는 둘만 만날 때는 거의 없었고 대개 성경 공부 모임의 여러 친구들과 함께 만났다. 그러면 나는 다른 남학생과도 자주 이야기 하고 때로 큰 부흥회 준비 때도 녀석과 담당 구역이 다를 땐 서로 기다리는 시간에 같은 구역 남학생들과 짧은 대화를 하곤 했다. 녀석들은 모두 중학교 때는 나의 ‘백성’이었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나의 ‘신앙적 동지들’이었다. 그것이 그들과 대화하는 나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개헌 이후 녀석이 그런 나를 보면 하루 종일 골을 내고 그러면 ‘그 놈들’ 이 오해하니 그러지 말라고 일장 설교를 해댔다. 오죽했으면 남학생들이 나와 평범한 대화를 하면서도 녀석에게 오해받을까 봐 녀석이 혹시 오지 않나 주위를 살폈다. 우리의 대화는 대충 이랬다.

“어이~ OO. 거긴 잘 끝났냐?”

“응. 정리 끝내고 오는 길이다. 그쪽은 어떻냐?”

“잘 끝났어. 야, 반장 온다. 우리말 하지 말자. 저 놈 골 내면 우리만 힘들지.”

“저 밴댕이 자식. 반장은 무슨. 졸업 한지가 언제냐. 막내(녀석은 친구들 사이에서 생일이 가장 늦었다)라고 우리가 너무 봐준다.”

“아-. 저 봐라. 표정 안 좋다. 그냥 갈걸.”

“됐어. 저거 지가 아직도 반장인 줄 안다. 쯧쯧.”

물론 내가 다른 남학생들에게 선심을 쓰고 그들과의 시간을 더 즐겼다는 것은 아니다. 녀석도 그건 알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도 나를 여자로 대할 녀석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지겨운 잔소리를 해대며 나를 고립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심지어 나의 순진한 백성들을 남자들은 여자들이 웃기만 해도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안다는 둥, 나는 너무 남자들을 모른다는 둥, 남자들을 너무 의리의 존재로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둥 하는 모함질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녀석은 나를 압박하기 위함인지 저도 다른 여학생과 말 섞기를 극도로 자제했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있을 경우 다른 여자 아이에게 할 말이 있으면 나를 통해 묻는 짓도 서슴없이 했다. 마치 옛 조상들이 내외하듯이 서로 면전 앞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 통해 말하게 하는 양반들처럼. 게다가 불가피한 일로 다른 여학생을 만날 일이 있으면 내게 미리 어떤 용건으로 그 여학생을 만나 말할 것인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인지 자세히 말했고 그 후에도 일일이 대화 내용을 알려 주었다. 한 번은 내 여자 친구가 녀석과 제2 외국어 선택이 같아서 녀석에게 질문을 했고 녀석이 그에 대해 답변을 하다가 시간이 길어졌다. 곁에 있던 나와 녀석의 친구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들인지라 둘을 잠시 보고 있다가 우리끼리 대화를 시작했다. 

“야, 우리도 제2외국어, 같은 한자 문화권(중국어, 일어)끼리 한 번 토론을 해 볼까?”

“그러자. 불어야 뭐 웨, 위, 꾸지... 울랄라 어쩌고 하는 원시인의 말에 더 가까우니.”

녀석의 친구(그 녀석도 나의 친구다)와 나는 불어의 이상한 모음들을 흉내 내며 낄낄대고 중국어와 일어의 욕 같은 소리들을 신중히 비교 분석했다. 두 팀의 대화가 끝나고 집에 갈 때 녀석이 말했다. 

“아까는 미안하다.”

“뭐가?”

“OOO 하고 말한 거.”

“내가 괜찮다고 했지!”

녀석 때문에 마치 내가 질투나 하는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거 같아 속이 상했다. 그래도 녀석은 꿋꿋하게 한 마디 더 했다.

“다음엔 그런 일 없을 거다~.”

나는 그런 녀석이 참 부담스러웠다. 마치 녀석의 행동으로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영영 왕따를 당할 것 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항상 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녀석은 그것이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했다. 녀석의 고집에 나는 졸지에 ‘최소한의 예의’ 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나쁠 뿐이었고 다른 친구들과 멀어질 까봐 녀석이 다시 미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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