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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네 일상 19화

-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

by 마르와 앨리

어느 날 심심한데 딱히 할 일은 생각나지 않아, 핸드폰 사진 앱을 열었다. 시간을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낄낄대다가 어느 여름 부모님과 함께 가족여행을 가서 찍었던 사진들을 발견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2층짜리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찍힌 컷 1장. 굉장히 아릅답거나 특이해 경관으로 의미가 있어 뵈는 사진은 아니었다. 정직하게 떡-하니 찍힌 사진의 중앙에 '조정형외과'라는 간판만 시선을 잡아끈다.


네 가족이 함께 소도시를 걷는 중, 아빠가 "어?" 하기에 마르(나)는 "왜?" 했다.

(아빠) "여기도 조정형외과가 있어?"
(마르) "뭐, 있을 수 있지. 조 씨가 한둘인가"
(아빠) "조정형이 많나.."
(앨리/마르/엄마) "... 조정형?????"


조정형 씨를 사이에 두고 네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요리조리 시선을 교환하며 방황하는 서로의 눈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이때 앨리의 눈에서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 '뭐죠,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 3초 뒤에 아빠는 갑자기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큰 목소리로 "아, 오? 어-!"하고 내뱉었다. 아빠가 어릴 적 살던 지역에 '조정형외과'가 있었는데, 어린이였던 그는 그 병원을 '조정형'씨라는 의사가 본인의 이름을 모두 내걸고 하는 '외과' 전문 의원으로 이해했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병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살아왔는데, 다른 도시에도 또 다른 외과의사 '조정형'을 보고 신기한 동시에 반가웠던 것이다. 음, 그냥 '조'씨의 성을 가진 의사의 정형외과와 그 분점들일 가능성은?


배경지식이 부족한 어릴 때에는, 눈에 들어온 것을 해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머리가 커진 후에 문득 잘못 이해했던 것을 떠올려 생각을 바로잡기도 하고 말이다. 점점 더 많이 알게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본인의 관점이 굳어져 편향성이 생기기도 한다.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앞에서도, 본인이 잘 몰랐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깨달음이 적은가?


아빠의 조정형외과 일화도 그럴 수 있는, 별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세상이 뒤집힌 듯 충격을 받은 아빠의 표정과 반응이 웃겨서 앨리와 엄마, 나는 한바탕 아빠를 놀려댔다. 기념사진도 찍어두고 말이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우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와 같은 상황인 것. 다만 우리 아버지는 가방이 아니라 조정형외과에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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