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스킨은 롱패딩
게임이나 메타버스 등 온라인 세상에서 아바타가 착용하는 패션과 스타일, 아이템 등을 '스킨(skin)'이라 부른다. 저 옛날로 돌아가면 싸이월드와 메이플스토리로 전 국민이 스킨이라는 말을 배웠다. 게임 속에서 다양한 스킨을 구매해서 아바타를 꾸미는 것과 현실에서 각자가 본인의 스타일을 가꾸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꾸미기로 혹은 꾸미지 않기로 결정하는 심리가 비슷하다고 느낀다.
나(마르) 어릴 때는 한창 심즈 게임(The SIMS)이 유행이었다. 나도 이 게임을 몇 차례 시도해 봤으나, 늘 게임을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지쳐서 나가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아바타의 일과 사랑 등 인생을 꾸려가는 이 게임의 첫 번째 스텝은, 당연하게도 나의 아바타를 꾸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머리스타일부터 이목구비의 모양, 체형과 옷 스타일까지 다양한 것들을 정해야 하는데, 그 앞에 선 나는 심각한 결정장애를 겪곤 했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고 '나를 닮은 아바타를 만들까' '내가 지향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거듭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된 나는 심즈 게임을 하지 않고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지만, 옷을 입을 때마다 같은 고민에 빠져 거울 앞에서 뜸을 들인다. 어제, 그제 이런 스타일을 입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 보기에 같은 옷을 여러 번 입는 무신경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평범한 수준의 고민이라 생각했다. 물론 세상에 평균과 평범은 없다는 듯이 자매 앨리는 생각이 다르다. 앨리는 이틀 연속 같은 후드티를 입고 회사에 가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특히 입은 옷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갖춰 입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귀찮아하고, 한 번씩 마르의 아웃핏이 마음에 들면 "오 귀엽네!" 한마디 한 후 다음 날 그대로 입고 나간다. (그렇다, 두 사람은 체형이 거의 똑같다.)
패션에 크게 관심 없는 두 사람인데도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니. 생각의 차이가 극대화되는 건 겨울이다. 12월부터 앨리의 기본 스킨은 롱패딩이다. 아바타 스킨처럼 롱패딩을 매일 고수하기도 하고, 정말 롱패딩을 자신의 피부처럼 두르고 다닌다는 뜻이기도 하다. 앨리의 논리는 이렇다. 한 겨울 코트 차림은 너무 춥고, 또 코트 색이나 스타일에 맞춰 그 안의 옷을 챙겨 입는 것은 번거롭다. 하지만 롱패딩을 입으면 가장 따뜻하고 모든 걸 가려주기 때문에, 스타일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가장 '합리적'이다. 앨리는 롱패딩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이다. 마르도 롱패딩의 장점에 동의하지만 주 4-5일 같은 외투를, 특히 꽁꽁 싸매는 롱패딩만을 입는 앨리의 의생활은 이해하지 못한다.
롱패딩이 널리 보급되고 몇 번의 겨울을 보내며, 마르와 앨리는 몇 번의 롱패딩 설전을 거쳤고 아직도 거치고 있다. 마르는 적어도 하루이틀은 그 롱패딩 피부를 벗겨보려고, 앨리는 롱패딩의 은혜로움을 전도하려고. 물론 생각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오늘도 마르는 코트를, 앨리는 롱패딩을 입고 함께 외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