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사람, 안녕하세요?
앨리는 전생에 개였을지 모른다. 눈이 오면 뛰쳐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걸 보면. 물론 현생의 앨리는 인간이므로 뛰쳐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사람도 만든다. 눈이 많이 온 날은 크게 더 크게, 적게 온 날은 작은 눈사람으로 여러 개. 나(마르)는 설경을 보러 마지못해 쫓아나가는 편이지만, 막상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하면 신이 나서 열정을 불태운다.
일단 정성을 다해 눈사람을 하나 세우고 나면, 그때부터는 일상 중에 문득 그의 안녕이 궁금해진다. 해가 강하게 비춰드는 낮이면 '그늘에 세워줄 걸' 녹을까 걱정이 되어서, 저녁이면 내일 오전까지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되어서. 그래서 하루에도 2번, 3번 눈사람이 있는 길로 짧은 산책을 나선다. 올 겨울 가장 심혈을 기울여 키 약 100cm의 건장한 눈사람을 만든 후, 앨리는 심지어 본인의 눈사람 앞에서 다른 객이 사진을 찍는 것을 숨어서 흐뭇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그 모습은 진정 애정과 광기가 흘러 보였다.
그 눈사람은 2-3일 형태가 유지되다가, 나흘째 아침에는 머리가 실종된 채로 발견되었다. 우리는 사인을 추측했다. 나는 햇볕에 접합부가 녹아 약해졌을 거라 했고, 앨리 탐정은 누군가 일부러 부쉈을 거라 말했다. 그는 주변에 뭉쳐진 눈덩이가 없는 것을 물리력 행사의 증거로 제시했고, 나는 이번엔 판사가 되어 수긍했다. 아쉬웠지만 큰 슬픔은 없이 보내줬다.
눈이 내린 후 산책 길 여기저기에서 불쑥 솟아있는 사람들의 동심을 보면 잔잔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만든 눈사람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 만든 눈사람도 아껴주고 싶다. 어제는 손을 많이 타는 난간에서 발견한 손바닥 크기의 눈 피카츄를, 인적이 드문 나무 옆 한구석에 놓아주었다. 다음 날 햇볕에 한쪽 귀만 약간 녹은 모습을 발견하니 한번 더 작은 웃음이 났다.
결국은 그런 마음이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서서히 사라질 수 있기를 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