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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네 일상 8화

- 텔레파시 크로스

by 마르와 앨리


마르와 앨리는 유명한 텔레파시 능력자다. 능력치는 상당해서 경험한 이들을 매우 놀라게 한다. 이 대단한 능력에 한 가지의 한계가 있는데, 그건 단 한 명, 즉 서로에게만 통한다는 것이다.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는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맥락이 차곡차곡 쌓인다. 함께 경험하는 일화도 많아지고, 각자의 하루도 흘러가는 대화에 등장하므로. 또 같은 콘텐츠를 보고, 같은 식사를 하는 확률도 높아지므로. 게다가 마르와 앨리는 어릴 적부터 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도 함께 보냈다. 당연히 차이도 많지만, 비슷한 점도 정말 많다.


전체 인생 중 공유하는 시간이 50%가 넘으면서, 현재도 그 공유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 사이에 텔레파시가 통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을까? 정답은 "매우 높다." 마르와 앨리가 보증한다.


나(마르)는 종종 "그거 있잖아, 그거."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말버릇이 있다. 고유명사가 잘 생각나지 않으면,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어떠한 정보와 의사도 전달할 수 없는 이런 발화는 의사소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앨리에게는 이렇게 말하면 10중 7-8 정도는 말이 통한다. 빨래, 공과금, 점심식사 메뉴 등 '그거'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다. 텔레파시 크로스의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노래 한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앨리의 입에서 그 노래가 나와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다. 최근에 발매된 노래도 아니었고, 굉장히 뜬금없는 상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입에 가글을 머금은 상태로 '음음↗음↘음↗' 하고 말해도, 대충 억양으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두세 번 정도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다.


한 번씩 이 텔레파시 크로스 때문에 재미있는 일도 생긴다. 최근 앨리가 거실에서 영화 '슈렉'을 보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오랜만에 '슈렉' 캐릭터를 눈에 담는데, 문득 기시감이 드는 것이다. '음, 누구지. 누구랑 닮은 것 같지. 아! AAAA..?' 즐겨보는 인터넷방송 스트리머와 너무 닮았다고 느낀 것이다. 외형의 아우라를 넘어 다른 캐릭터들에게 당하는 탱커 포지션과 리액션까지! 그러고 나서 '덩키'를 보는데, 도드라진 하관과 말로 주변인을 패는 능력이 또 다른 스트리머 BBB로 보였다. (이들은 서로 친한 스트리머이고, 하나의 스트리머 크루로 활동한다. 누구인지 맞춰보시라.) 거기까지 생각하고 앨리한테 말을 걸었다.


마르 : "저 슈렉, 누구 닮지 않았어?"
앨리 : "AAAA?"
마르 : "헐, 어떻게 알았어? 그럼 덩키는?"
앨리 : "BBB"
마르&앨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대학에 입학하며, 나고 자라던 곳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특히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꽤나 당황했다. 이렇게 생각과 표현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놀라움은 양적인 인풋뿐 아니라, 질적인 차이에서도 크게 비롯되었던 것 같다. 같은 사물과 상황을 두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을 이해하는 경험이 생소했고, 때문에 스스로 자기 검열도 심해졌던 시기였다. 조금이나마 나이를 먹고 느끼는 것인데, 사회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뇌가 일부 연결된 사람도 필요하다. 검열하지 않고 스스로를 꾸미지 않으며 존재하는 편안함의 가치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마르에게는 앨리가, 앨리에게는 마르가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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