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처음 만나는 강아지와 산책 돌봄 일정이 있는 날이다. 밖은 비가 오고 있지만 꼭 밖에서만 배변하는 강아지가 많기 때문에 비가 와도 산책을 해달라는 (정확히는 배변을) 요청도 꽤 있는 편이다. 오늘도 실외 배변을 하는 친구라 비가 와도 산책을 해달라는 채팅을 보곤 우산과 산책줄 그리고 돌봄 상황을 녹화할 액션캠을 챙겨 출발했다. 산책줄은 일하는 플랫폼에서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목에 하나, 기존 하네스(목, 가슴줄)에 이중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제품을 보내주었는데 구조상 기존 하네스에 연결하는 줄이 더 길기 때문에 목에 있는 줄은 내가 강한 힘으로 당기지 않는 이상 졸리는 일이 없어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다. 그래도 목줄을 불편해하면 보호자 동의 하에 기존에 쓰던 줄만 사용하기도 하는데 첫 만남엔 나도 이 강아지가 어떤지 잘 모르니 이중 산책줄을 사용해 보는 편이다.
버스 타고 30분, 어느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공동 현관문이 없는 조금 연식 있는 아파트였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이미 소리로 어느 집이 내가 방문할 집인지 알 수 있었다. "컹컹 컹컹" 짖는 소리만 들으면 문을 열기가 무서울 수도 있지만 경험 상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밖에서 소리가 들려서 짖을 뿐, 물거나 달려들 생각으로 짖는 건 아닌 것 같다. 보호자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보며 띡띡띡띡 번호를 누르자 현관문이 열린다. 똥똥한 몸매를 가진 귀여운 크림색 프렌치 불독이 중문 너머로 나를 누구냐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중문을 열고 "안녕~우정아" 하며 친한 척을 한번 해주고 손바닥을 천천히 코 쪽에 가져다주었다. 내 냄새를 맡게 해 주며 나는 위험하지 않다고 알려주는 뜻이다. (그냥 나만의 의식 같은 거다) 우정이는 다행히 짖기만 하고 공격성은 없는 편이라 빠르게 산책줄을 찾아 산책할 준비를 했다. 처음 가는 집은 물건의 위치를 찾는 게 어려운데 보호자가 미리 물건을 잘 모아 한 곳에 두었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처음 보는 강아지가 어떻게 낯선 나를 따라갈 수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강아지들은 산책을 그 이상으로 좋아해 산책줄을 흔들며 산책을 가자고 하면 의심하면서도 좋아하는 게 보인다. (귀엽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지만 안전하게 이중 산책줄을 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이 녀석 나를 알아서 끌고 다닌다. 자신 만의 산책 루틴이 있다는 듯 프렌치 불독 특유의 뒤뚱뒤뚱한 걸음으로 이쪽저쪽 냄새 맡고는 너무 당연하게 토독토독 걸으면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나는 우정이 덕분에 비를 피해 산책을 했다. 우정이의 줄은 당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잡지도 않을 정도의 텐션으로만 잡고 안내해 주는 대로 살짝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닌다. 웃기게도 알아서 쉬하고 응아도 하고 야무지게 또 다른 출구로 나가 이제 볼 일을 다 봤으니 집에 들어가자고 한다. 아직 산책 시간이 남아 더 해주려고 이쪽으로 가자 저쪽으로 가자 해보았지만 단호하게 싫다고 표현한다. 걷지 않는 강아지를 억지로 산책할 수도 없으니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산책줄을 풀고 밥 줄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우정이 엄마인데요.
산책하기 전에 산책 코스
알려드리려고요.
"아, 이미 산책하고 왔습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맞나요?"
"네! 맞아요!"
전화로 어떻게 우정이가 날 안내해 줬는지 코스를 차분히 말씀드리니 전부 맞다며 수화기 너머 걱정을 내려놓는 기분이 느껴졌다. 이처럼 우정이 뿐만 아니라 꽤 많은 강아지들이 자신만의 산책 코스를 가지고 있다는 걸 펫시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나를 그저 줄 잡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줏대 있게 자신만의 산책 코스를 걷는 강아지들을 보면 강아지는 이것조차 귀엽구나 하는 몽글한 마음이 든다. 또한 이런 건 펫시터가 아니면 보기 힘드니 이 직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하루 루틴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펫시터라는 직업에 깊게 빠져들게 한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루틴을 지켜주기 위해 산책 줄을 들고 밖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