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시터에게 부탁하는 특이한 요청
펫시터 일을 하다 보면 가끔 특이한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오늘도 그 특이한 요청 중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보통 펫시터가 하는 일은 실내/산책 이렇게 2가지로 구분되어 있고 실내로 신청하면 집 내부에서 화장실, 밥, 물, 놀이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화장실이나 물 정도는 갈아주는데 오늘의 보호자분은 "집에 오셔서 만지지 말고 강아지 자는 것만 지켜봐 주세요."라고 채팅을 보내주셨다. 특이하다. 어떤 강아지인가 정보를 확인해 보니 나이가 좀 있는 중년 강아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심하게 지켜봐야 할 것도 아닌 나이었다. 돌봄 시간도 2시간이나 되었다. 뭘까 뭘까 하며 의문점을 가진 채 집을 방문하니 둥글둥글 납작한 하얀색 페키니즈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짖지도 않고 자다 깬 상태로 나와 누구냐는 듯 냄새를 맡았다.
살짝 주먹 쥔 손을 코 앞에 가져다 주니 킁킁킁 냄새를 한차레 맡아본다. 그러곤 다 확인했다는 듯이 몸을 돌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눕는다. 나는 조심히 안으로 들어가 밥그릇과 물그릇의 위치를 확인하곤 다 먹은 그릇은 닦아 제자리에 두고 물그릇은 새물까지 채워 자리에 두었다. 그리곤 배변패드도 살펴보았는데 깨끗한 상태라 내가 굳이 갈아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 집에 들어온 지 10분, 내 할 일이 없다. 아직 1시간 50분이나 이 집에 더 머물러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여전히 '가만히 강아지 지켜봐 주세요'라는 요청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아지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 누워 자고 있고 미동도 없다. 아무리 살펴봐도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요청 사항 대로 자고 있는 강아지와 조금 떨어져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보이는 위치에 앉아 정말 말 그대로 자는 강아지를 지켜보았다. 나도 강아지를 9년 넘게 키우고 있지만 이렇게 정말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 적은 없어서 참 묘한 기분이었다. 어찌어찌 시간은 흘렀고 나는 그동안 자는 강아지 몇 장을 찍어 보호자님에게 잘 자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솔직한 마음으론 '그냥 지켜보기만 할 거면 나를 왜 불렀을까?' 하는 마음이 피어올랐지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시간 맞춰 퇴근하고 예의상 잘 돌봤다는 메시지도 하나 더 보내드렸다.
그리고 얼마 뒤, 띠링하고 알림 소리가 들렸다. 이건 펫시터 선택 예약 알림이다. 한번 간 집은 다음 예약부터는 자신에 집에 왔던 펫시터에게 예약 요청을 보낼 수 있는데, 이건 펫시터 일을 많이 하고 싶은 나에겐 단골이 되겠다는 징조와 다름이 없어 굉장히 기쁜 일이다. 게다가 이번엔 산책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이 있다며 대면 요청도 했기에 저번에 궁금증으로만 끝났던 요청에 대해서 물을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님~ 하며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니 나와 거의 비슷한 20~30대 여성 보호자분이 맞이해 주셨다. 산책은 보호자분이 직접 준비해 주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일단 지금까지 자신과 가족 외에 타인에게 산책이나 재우는 등 맡겨본 적이 없기에 불안도가 높은 점, 강아지가 공격성이 있고 예민한 편이기에 가족이 아니면 하네스 채우는 것도 어렵다는 점, 코 짧은 페키니즈 종 특성상 빠르게 노화가 진행되어 가진 질병이 많다는 점 등등 지금까지 어떻게 혼자 키워왔는지 들을 수 있었다. 나 또한 공격성을 가진 강아지를 20살부터 혼자 키워왔기에 공감이 되어서 그런지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켜봐 달라는 요청은 공격성이 있을 수 있으니 만지지는 말되 지병이 있어 아플 수 있으니 자신이 집을 비운 동안 봐달라는 뜻이었다. 다 듣고 나니 왜 그런 요청을 적었는지 이해가 갔다.
나는 그 이후로도 자주 페키니즈 집에 펫시팅을 하러 가고 있다. 처음에는 나에게 아는 척도 안 했는데 이젠 많이 봐서 그런지 인사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짧은 코로 킁얼킁얼 거리면서 반겨준다. 나에겐 이런 소중한 인연들이 쌓여 삶을 행복하고 관계있게 만들어준다. 가족 외에 믿고 소중한 존재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니 이런 기쁨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