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바움가트너 - 폴 오스터

by 트로이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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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인 폴 오스터가 생애 마지막으로 집필한 작품, 바움 가트너를 읽었다. 이 책은 2023년도에 발표됐는데, 작품을 집필할 당시 폴이 지병인 폐암을 인지하고 있던 상황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당시 나이 (70대 중반)와 골초였던 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볼때 폴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 작품을 썼을 거라는 합리적인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적어도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은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사이먼 바움가트너는 뉴저지주 뉴웍에서 평생을 살아온 유태인이고, 프린스턴 대학교의 은퇴교수로 설정이 돼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 출신이란 점만을 제외하곤, 폴 오스터의 자화상이다. 그럼 자연스레 이 작품은 폴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과 남기고 싶은 얘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10년 전 사고로 평생의 동반자를 잃은 바움가트너 교수. 이제 70에 접어든 그는 철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삶을 정리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터의 일환으로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연구서를 이제 막 끝낸 상황이고. 여기서 키에르케고르가 연구주제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책에서는 이런 연구서를 끝냈다라고만 나와있다. 다만 키에르케고르는 대표적인 실존주의자가 바움가트너의 은퇴 연구 주제라는 생의 마지막을 앞둔 폴이 느끼고, 얘기하고 싶은 주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폴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사건, 혹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환경의 변화를 쫓아가는 식이 아니다. 물론 플롯은 있지만 소위 말하는 기승전결과는 무관하고, 또 환경의 변화나, 사건의 흐름은 폴 오스터가 관심을 갖는 사항들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주인공의 의식의 서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쉽게 말하자면 주인공이 사건이나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 나가느냐 하는 것 보다는 특정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폴 오스터의 관심사다.


이같은 폴의 이전 작품들의 연작선상에서 볼 때 바움가트너는 큰 변화는 없다. "70을 눈 앞에 둔 노교수에게 어떤 일이 펼쳐지는가" 하는 게 작품의 주 내용이 아니라,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또는 그의 의식은 어떻게 현재의 바움가트너라는 사람을 정의하는가" 가 이 책이 얘기하고 있는 바다. 그리고 간단히 요약하자면 70세의 은퇴교수 바움가트너는 추억을 붙잡고 현실을 버틴다.


바움 가트너의 노년의 일상은 연구주제의 완성이라는 저술활동이 포함되지만 그 것 보다는 규칙적인 일상과 추억하기로 구성된다. 매일의 규칙적인 생활패턴 뿐 만이 아니라, 여동생과의 연락 그리고 뒤늦게 만난 연인과의 일상에서도 바움 가트너를 존재하게 하는 건 10년전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애나에 대한 생각이다. 그녀를 추억하고, 모든 일상에 그녀를 대입하는 게 현재의 바움 가트너에 대한 정의다.


바움 가트너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추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사랑했던 아내 애나에 대한 그리움을 좇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70의 나이에 아내의 친구였던 주디스에게 청혼을 하고, 이 청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괴로워하는 걸 보면, 평생연인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던 애나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닌 듯 하다. 그 보다는 바움 가트너에겐 가장 좋았던 시기, 혹은 그에게 가장 행복감을 주었던 대상으로서 애나를 추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다.


폴 오스터에겐 이 책이 발간되기 1년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이 있다. 이런 점이 바움가트너의 사별로 드러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폴 오스터는 바움가트너를 통해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자신이, 어떻게 현실의 본인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며 살아가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같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코맥 매카시는 말했는데, 폴 오스터에게 노화와 이에 따른 쓸슬한 환경은 부차적이다. 폴에게 노인이란 삶의 마지막 스테이지에 이른 "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는 좋았던 상황을 추억하며 살아간다.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면서도 좋았던 상황과 대상에 대한 추억이 현재의 "나"를 정의한다. 데카르트의 명언이 떠오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폴은 바움가트너를 통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추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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