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으로 고통을 이겨낸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

by 트로이의 연인

1927년에 출간된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손턴의 유명한 희곡인 "우리 동네" 를 연극으로 관람한 적적은 있지만 그의 소설을 읽게 된 건 처음이다. 최근에 다시 출간된 걸 보면 이렇다할 이유가 있긴 했을텐데, 그 연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고 그냥 잘 아는 유투버께서 추천해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1714년 7월 20일, 페루의 리마와 쿠스코를 잇는 다리가 무너져 다섯 명의 여행자가 추락사했다. 다섯명의 희생자에겐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걸까? 이 사건은 그저 우연인건가 아니면 우주의 어떤 계획, 그러니까 신의 계획이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추척해 본 주니퍼라는 수사가 있다. 책의 화자는 이같은 주니퍼 수사의 조사결과를 따라가며 실제로 다섯 명의 희생자들에게 있었던 일들과 그들의 삶을 전지작 작가 시점으로 소개한다.


주니퍼 수사가 밝히고자 했던건, 신의 계획이 있다면, 그리고 그에 따른 인간 삶의 어떤 패턴이 있다면, 다섯 명의 희생자들의 삶을 조사함으로써 추락사로 삶을 마감하게 된 다섯 명 각자에게 주어진 불가사의 한 무언가 였다. 하지만 결국 주니퍼 수사는 아무 것도 밝혀 내질 못한다. 물론 나름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해석은 갖고 있지만 그 해석을 조사의 결론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이제 화자는 주니퍼 수사가 미처 밝히지 못했던 내용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를 찾아보면서 소개한다. 이들 각자는 다들 사연이 있다.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실제 사건이 아니어서인지 희생자 5사람은 각각 사랑하는 대상과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제 그 불화를 딛고 다시 제대로 좀 사랑해 보고자 다가서려는 의지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사랑에 대한 열망은 뜻대로 진행이 되지 못한다. 산 루이스 레이 다리의 붕괴로 더 이상은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 책이 "고통의 문제" 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문제. 갑작스런 사고, 재난, 재해, 질병과 같은 고통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깊은 성찰을 들어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이미 서두에서 이와 같은 문제는 이 책의 주제가 아님을 초반에 밝히고 있다.


책에 담긴 서평이 말하듯 손턴 와일더가 이 책을 쓴 건 주니퍼 수사의 원대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손턴이 사고사라는 비극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건, 이 사고가 신의 계획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일 뿐인지에 대한 게 아니다. 그는 불가항력적 사고를 신의 입장이 아닌 희생자들과 남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다룬다. 왜 하필 그들이 그 때 거기서 죽어야만 했나는 손톤에게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것 처럼, 결국엔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마저 다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잘못 이해하면 인간의 비극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믿고 싶고. 다만 사고사를 왜 라는 관점 보다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은 존재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거다. 삶은 그런 사랑으로 충분하니까.


언뜻 보면 인간의 생사고락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철부지의 사랑 예찬론으로 들릴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이거 도대체 뭔 개소리야?" 라는 어이없음이 찾아왔었으니까. 그렇지만 책을 덮고 한 참 뒤에 다시 생각해보니, 손톤이 산 루에스 레이의 다리를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어떤 것이었을지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됐다. 말한 것 처럼, "왜?" 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그러기에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용기내어 사랑해야 된다는 거다. "왜?"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건 인간으로선 이미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 무병장수 하다가 때가 됐을 때 잠깐 앓고, 남은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고 그렇게 떠나고 싶지만, 그런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사고사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 보다도 적지 않을까 싶다. 호상이라는 집들도 사정을 보면, 정말 본인도 가족도 많이 힘들었던 경우가 많다. 헤어짐이 너무 갑작스러운 경우, 분명히 어마어마한 슬픔과 분노가 따르겠지만, 정말로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을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것만이 온갖 불행으로 가득찬 것 처럼 보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대처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같은 입장에서 손톤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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