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 이기호
무엇보다 이 책이 보여준 큰 미덕 중 한가지는 개의 의인화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시봉이라는 이름의 비숑 프리제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긴 한데, 그렇다고해서 책이 개의 시점에서 얘기를 끌고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실제 작가가 키우고 있는 견종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숑 프리제라는 프랑스출신 개의 등장 또한 특별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혈통과 역사를 따져보자면 그에 못지 않은 개들 또한 한 두 종이 아닐테니까.
이 책은 개에 대한 얘기 보다는 개를 둘러싼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있다.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개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정채민, 개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박유정, 그리고 개에 매여 살아가는 주인공 이시봉의 주인 이시습. 한 사람을 더 추가하자면 스페인의 왕비(카를로스 4세)인 마리아 루이사의 정부이자 최연소 총리였던 마누엘 고도이가 있다. 책의 분량으로 보면 고도이 또한 주요인물임에 틀림없으나 결국엔 개에 매여 산 이시습의 19세기 버젼이라고 생각한다.
Love is not like. 라는 명언이 있다. 정채민의 개에 대한, 구체적으로는 비숑 프리제에 대한 사랑이 그렇다. 정채민은 개를 좋아한다. 그리고 개와 더불어 살아간다. 개에게 애정을 쏟고, 개의 복지에 대해 그 누구 보다도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채민에게 개란 돈벌이 수단이고, 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수단이다. 살아있는 수집품이라고나 할까?
정채민에게 속아서, 그러나 결국은 정채민을 속인 박유정. 그녀는 삶을 포기할 정도로 비쇼 프리제 가족에 연연한다. 대상을 좋아하고 그 대상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니고, 대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살았으니 박유정은 누구보다도 개를 사랑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결국엔 가난한 삶을 이어가면서까지 지켰던 비쇼 프리제 가족이 전부다 팔리는 신세에 놓이게 되지만, 최소한 그녀는 개를 팔아치우는 짓(?)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 약쟁이로 자라도록 방치했으면서도 말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이시습이 있다. 개를 좋아하는 건지, 사랑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구지 따지자면 사랑하는 쪽이지만 이시습에게 이시봉은 그냥 그의 비루한 삶을 변호하는 생활자체다. 나가기 싫지만 개를 산책시키러 가야 하고, 사람들과 말 섞기 싫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시봉에게 말을 건넨다. 대답은 필요 없다. 애시당초 들을 생각도 없으니까. 그런 생활의 일부지만, 어느 순간엔가 정말로 이게 이시봉에게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습관처럼 그렇다고 믿고 살아왔던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이시봉을 뺐기고, 이시봉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지 개에 대한 애정의 확인이 아니라, 본인의 삶에 대한 확인이기도 하다. 그가 이시봉을 되찾게 되는 과정은 그의 일상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결국 이시습은 더불어 살아가며, 경쟁에도 뛰어들어야만 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더벅머리 청년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으로. 이시봉 또한 눈이 보이지 않는 털복숭이 잡견에서, 비숑 프리제로 돌아온다. 비로소 반려견이 된 것이다.
정채민과 박유정에게 개란 반려견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 또는 애정의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개가 아니고 인간이 만든 무엇인가에 지나지 않았다. 개는 개일 뿐이지만, 역사를 통해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이웃이다. 개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개가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개는 어디까지나 개일 뿐이다. 그래서 이시봉의 여행은 애정을 받는 듯 하지만 방치된 관심의 대상에서 한 사람의 삶과 동행하는 반려견으로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취지에서 보자면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아울러 나름 읽는 재미도 있다. 숨겨진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엮어 놓았다. 비숑 프리제완 관련한 19 세기 스페인의 역사까지도 잘 버무렸다. 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여서 좋았고, 개를 개로서 자리매김한 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