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스위스 여행
[여독].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의미는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이다. 런던과 스위스를 2주간 여행하고 돌아온 나에게 남은 여독은 ‘고향도 아닌 곳에 대한 향수병’과 ‘한여름밤의 꿈 같았던 여행에 대한 그립고 아련한 감정’이다. 채울 수 없는 그리움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에게 독이다.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사실 비일상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된다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런던과 스위스가 떠오를 때마다 여행이니까 좋았던 거지, 가서 살면 한국보다 더 힘든 곳이라며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왜 다른 여행지들보다 유독 심할까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좋았던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런던 거리엔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고,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살 수 없는 전통 블루스 바(BAR)도 런던에선 남녀노소가 퇴근 후에 즐겨 들르는 곳이다. 공원에서는 러닝, 축구, 배구를 하는 사람들, 강에는 조정을 하는 사람들, 강가를 줄지은 펍 테라스에는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그 낯선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움을 넘어 시기까지 들었다. 런던의 마지막 날 밤, 남편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자국민으로 태어난다는 조건 하에 다음 생에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다음 날, 스위스로 이동했다.
스위스에서 마지막 날은 어땠을까? 당연히 다시 태어난다면 스위스인으로 태어나겠다고... 스위스는 보통 알프스 산맥 등 자연경관을 보러 많이 가는데 우리는 현지인들이 즐기는 수영장이나 호숫가 피크닉 장소를 많이 방문했다. 거기서 여유롭게 한여름 수영을 즐기고 다이빙을 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는 우리에게 조금 많이 충격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챗gpt와 스위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위스는 한국과 달리 교육방향도 ‘대학입시’가 아닌 ‘직업교육’에 맞춰 있고, 행복지수 1위도 많이 한 나라에다, 자원도 풍부한 복지국가에다, 각자의 제각기 다른 재능을 존중하는 나라라는데... 내 삶은 충분히 행복한 삶이었는데. 스위스의 비일상을 보고 갑자기 울적해졌다. 추운 나라인 스위스의 사람들에게도 수영이 가능한 ‘여름’은 비일상적인 행복일 텐데.
어쩌면 나는 내가 스위스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탓할 게 아니라 비일상을 충분히 즐기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비일상은 일상이 있어야 의미 있고, 일상에 최선을 다할 때 더 빛나기 때문이다. 매일 블루스가 나오는 바에 가서 음악을 듣는다면 더 이상 그 경험은 특별하지 않을 것이고, 매일 태양이 내리쬐는 맑은 호숫가에서 수영을 한다면 그 경험은 시시해질 것이다. 에밀 아자르 <자기앞의 생>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어린 주인공이 마약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행복은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할 때, 당연한 것이 아닐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스위스 호텔에서 침대에 누운 채 창밖으로 발견한 무지개가 아름다웠던 것은 매일 뜨는 무지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아름다웠던 것은 계획하지 않은 채 찾아온 행운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