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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원 Sep 03. 2023

작년 SKY 대학생 2천 명 넘게 자퇴한 이유는?



작년 SKY 대학생 2천 명 넘게 자퇴한 이유는?          



지난해 소위 많은 학생이 진학의 목표로 삼는 SKY에 중도탈락자가 2천 명이 넘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자초지종을 보니 그 상당수는 의대를 가기 위한 목표를 위해 다시 수능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본인 스스로가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의사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선택이면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열정이 아닌 부모나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슬프다.          



고등학교 때 친구 가운데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가 있었다.

피아노를 어려서 배웠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포기했었는데, 가끔 그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우리 집 피아노 앞에 앉으면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선율이 그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지 신기하게 그 친구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 친구는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하고 싶어 했지만 음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고 계셨는데 무조건 경영학과를 가서 나중에 사업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와서 피아노를 치는 시간은 너무 행복해 보였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의사든, 변호사든 자신이 분명한 의사와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며 도전하는 것은 격려하고 응원할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 초등학생 때부터 소위 ‘의대 진학반’이라는 학원을 다니는 아이 가운데 자기 의지와 목표를 가지고 그부터 친구들과 놀 시간도 포기하고 도전하는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학생들 가운데 부모의 과욕과 내 자식이 ‘어느 대학 다닌다.’라든지, ‘내 자녀가 의사다.’라고 과시하고 싶은 부모의 과시욕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라오스에 있을 때 독일이나 북유럽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정도 라오스와 해외에 와서 봉사하는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독일은 일찍이 특별히 학문적인 목표가 있지 않으면 대학을 가기보다 전문 기술직에 도전한다고 한다.

그곳에 온 친구들은 대학을 가든,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해외에 와서 봉사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부모는 자녀가 잘 자라고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고 또한 그것이 부모의 행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녀의 스펙이 부모의 과시가 되거나 그것을 위해 자녀에게 어떤 진로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결국 서로에게 행복이 아닌 비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따금 학생들이 성적에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소식을 들으면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나중에 ‘다 너 잘되라고 한 얘긴데..’라며 땅을 치며 후회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경마를 할 때 보면 말의 좌우 시야를 가리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리게 하는 장면을 본다.

살면서 경쟁에서 이길 실력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린 학생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게 해서는 안된다.

다음 세대가 서로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우열 경쟁에 뛰어들게 만들면 결국은 모두 ‘경쟁지옥’에 살게 된다.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을 이겨야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진 괴물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는 각자 타고나고 주어진 재능과 달란트가 있다.

그것이 잘 개발되어 나뿐 아니라 남을 위해 그 재능이 빛을 발할 때 그 사람은 꼭 필요한 귀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에게 세뇌되듯이 자신의 재능이나 가능성과 상관없이 획일화된 경쟁판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 획일화된 경쟁의 세상에서는 결국 서열과 우열은 있을지언정 정말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게 된다.          


초등학생이 ‘의대 진학반’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단지 의대를 들어가기 위해 애써 들어간 대학을 중도포기하는 것이 누군가의 암묵적 강요는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성공을 위한 경쟁이 아닌 각자의 재능을 살리는 노력이 존중받고 각자 잘하는 영역에서 빛나길 바란다.

단지 높은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꽃을 피우고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돕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          



#의대 #의대진학반 #경쟁 #SKY대학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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