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에 이렇게 좋은 날씨가 계속되면 좋겠다 싶은 날들이 있다.
이번 가을날씨가 추석 황금연휴와 맞물려 산책이나 피크닉을 하며 선물 같은 날을 누리기에 최적이다.
이런 날에 한가롭게 강변에 앉아 여유를 즐기다 보면 ‘일 년 내내 이런 날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문뜩 든다.
하지만 일 년 내내, 그리고 평생에 같은 날씨라면 무더위 끝에 다가오는 선선함이나 살을 에는 추위 끝에 신선한 봄바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 못할 것이다.
살면서 인생에 습하고 더운 여름날이나 여름에 불청객인 태풍과 같은 시간을 반기며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 날은 누구에게도 다가온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짜증을 내고 무기력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라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을 열심히 땀을 흘리며 풍성한 결실을 생각하며 땀을 흘린다.
선선하고 힐링이 되는 가을날을 누릴 때 빨리 습하고 더워서 삶이 무기력해지는 장마철 여름날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그 여름날에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고 지나가기만 바랬던 사람은 가을을 누리기보다 춥고 쓸쓸한 겨울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클 수도 있다.
윤동주 시인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후반부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겁니다.
나도 인생의 사계로 생각하면 가을의 초입이라 할 수 있으니 나에게 ‘내 삶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는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지’를 돌아본다.
삶에 어려움도 없고, 무거운 짐도 없이 걱정할 일도 없는 인생은 단색 같아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 못한다.
어떤 이의 삶의 이야기를 보면 너무도 어렵고 힘든 과정과 삶의 무거운 짐이 있었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과 같이 마음이 밝고 청명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쉼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고 끝나고 한참을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주인공 ‘귀도’는 유대인으로 한 여인을 사랑해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다가, 2차 대전 때 결국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극한의 어려움을 겪지만 주인공의 말과 표정에서는 웃음과 행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귀도’는 아들인 ‘조슈아’에게 수용소의 시간을 1등을 위한 게임으로 여기게 하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귀도’는 아들을 살리고 자신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 슬픔이 가득한 이 영화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무엇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영화였다.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의 아름다움과 열매는 단지 얼마나 성공을 했고, 노후를 위한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다.
성공도 노후를 걱정할 자산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인생도 있다.
어떤 사람의 가을은 이룬 것이나 가진 것은 많이 없어도, 닮고 싶고 안기고 싶은 넉넉한 품과 같다.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이 있지만, 그것이 마음에 상처로 남지 않고 그 상처를 극복하고 성숙한 사람이다.
자신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상처를 가진 사람은 가시가 가득해서 사람들이 다가갈수록 그 가시로 찌른다.
그런 사람이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인생의 열매는 지위든 돈이든 많은 것을 가지고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성숙해서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품고 위로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어느 여름보다 오랫동안 덥고 습한 여름이어서 이 가을날이 더 소중하다.
이 가을에 내 인생에 어떤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지를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본다.
닮고 싶고 안기고 싶은 넉넉한 품과 같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