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 단풍이 생각난다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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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 단풍이 생각난다



이 가을을 보내며 미국 오하이오주의 톨리도에서 맞은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이 새삼 기억이 난다.

단지 단풍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거의 10년 만에 가족이 다 같이 모인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2011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아버지 나이가 75세 때의 일이다.

여동생 둘은 일찍이 모두 미국으로 시집을 가서 미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기는 했지만 라오스에서 들어와 다시 해외로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명절이 되어도 자녀가 셋이나 있지만 아무도 곁에 없어서 그래도 딸이 있는 곳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또 한 가지는 아버지 친구분이 사립 크리스천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라오스에서 홈스쿨을 하고 있던 아들 소식을 듣고 손주처럼 공부시킬 테니 보내라고 하셔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손주를 돌보는 마음도 가지시고 미국에 가기로 하신 것이다.

미국에 가려해도 영주권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갈 수 없지만 첫째 동생이 초청이 승낙되어 영주권이 나오셨다.

또 아버지가 영어 연설을 통역하실 정도로 영어를 잘하셨기 때문에 결심을 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부모님은 집값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 막내 동생이 사는 오하이오로 이민을 가셨다.

막상 부모님이 미국에 가 계신 동안 우리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국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석해 주셨고, 아들이 대학도 부모님 댁에서 다닐 수 있는 곳에서 장학금도 받게 되어 할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먹으며 대학을 다녔다.

드디어 2016년 가을, 두바이에서 우리가 하던 일을 마치고 아버지 팔순 잔치를 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당시에 LA에 살던 동생 가족도 한 번도 못 와보다가 함께 와서 팔순 가족 모임을 하고 부모님과 함께 여행도 하며 모처럼 가족이 함께 지냈다.

우리는 첫째 동생이 일찍 미국으로 시집을 간 이후 30년 간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적이 3번 정도밖에 없다.

아버지 팔순으로 모인 것은 그 30년 가운데 3번 중에 한 번인 것이다.



미국의 서부는 몇 번 갔었고, 동생네와 함께 캘리포니아 남부의 샌디에이고에서부터 북부의 샌프란시스코까지 3천5백 킬로 정도를 운전하고 다닌 적도 있지만 미국의 중동부인 오하이오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11월에 톨리도의 부모님이 자주 가서 걸으시던 공원의 단풍은 지금도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처럼 기억이 난다.

한국에도 이 가을에 단풍이 아름다운 곳은 많지만 너무나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만나 전혀 새로운 곳에서 누린 가을이라 그런지 더 오래도록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 단풍은 쓸쓸한 기억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그 해 단풍은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모인 풍성함이다.



부모님은 2020년 미국으로 가신 지 10년 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셨다.

2017년에 우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했기도 했지만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까지 다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왔기 때문이기도 한다.

결국 부모님의 미국에서의 10년은 아들이 내가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우리 부부를 대신해서 부모 역할을 해 주신 시간이다.

대학도 부모님 댁에서 다녔기 때문에 숙소비 걱정도 없었고, 방학에 짐을 뺄 걱정도 없이 지냈다.

나에게 오하이오는 부모님이 우리를 대신해 손자를 돌봐주신 고맙고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