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약하다.
강해지려고 하고 강하게 보이고 싶어 하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자립하고 싶어 하지만 불가능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 수도 없었고, 자랄 수도 없었다.
그러니 혼자이고 싶어도 혼자 일수 없는 게 사람이다.
어느덧 우리나라에서도 ‘돌봄’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러운 화두가 되었다.
아이들이나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은 신체적으로도 돌봄이 필요하다.
하지만 청년이나 중장년과 같이 신체적으로는 건강한 사람도 정서적인 돌봄은 누구라도 필요하다.
최근에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이러한 필요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예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명절이나 때가 되면 언제나 친척들이 전부 다 모였었다.
단지 자주 모인 것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하면 돕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결혼식, 장례식 정도가 아니면 명절이 되어도 그렇게 다 같이 모이지를 않는다.
우리는 불과 2~30년 사이에 가족이 함께 돕고, 이웃이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힘이 약해졌다.
더구나 코로나 펜더믹을 지나면서는 더욱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를 꺼려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마음에 외로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마음을 터 놓고 나누며 서로 도울 사람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을 생각하고 돕는 일도 자연스러운 연례행사였다.
나라가 잘살지 못할 때는 ‘어려운 분들을 나라에서 복지 예산으로 돕겠지.’라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복지 예산으로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지만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나눌 상대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은 일단 의식주 문제는 해결이 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손주 결혼식 날이 되어 일찍이 옷을 차려입고 기다리는데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을 때 마음이 어떨까?
정서적 돌봄의 문제는 복지에만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서로가 도와야 한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핸드폰 연락처를 보면서 연말에 마음이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은 분이 생각나면 전화라도 한번 드릴까 한다.
사실 우리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내가 먼저 누군가를 돕기 시작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
그것이 누군가를 돕는 것 이전에 내 마음에 온기가 식지 않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바빠도 각자도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돌볼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