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시간을 내어 혼자 산책을 다녀왔다.
다녀온 산책코스는 한성 과학고등학교 뒤편에 있는 안산 자락길이다.
생각에 정리가 필요하면 종종 혼자 산책을 하는데 혼자 걸으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사에 보면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라고 한다.
내 안에 생각이 복잡하고 어수선하면 결국 내 안에서 내가 쉴 곳이 없어진다.
자신의 마음이 내가 쉴 곳이 되는 나름의 비법은 혼자 걸지만 나와 걷는 것이다.
산책의 출발점이 된 한성 과학고 자리는 내 인생에 특별한 자리이다.
예전에 서대문 중학교를 나왔는데 지금의 한성 과학고등학교 자리가 예전 서대문 중학교 자리이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같은 학교로 배정된 친한 친구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매일 학교를 30분 이상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할 만큼 엉뚱한 곳으로 배정이 되었다.
학교를 다닐 때 당시는 지하철도 없었고 버스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언덕을 등산하듯 등교를 해야 했다.
중학교 졸업 후에 이곳을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다.
오늘 산자락에 오르기 위해 올라가면서 잠시 학교 앞에 우두커니 서서 옛 생각들을 해보았다.
사실 중학교 다니면서 나와 처지와 형편이 너무도 다른 친구들을 통해 학폭까지는 아니어도 정서적 육체적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중학교 2 학년 때 허리를 다쳐 몇 달을 병원에 누워 있기도 했고, 이래저래 바람 잘 날 없는 학창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내가 다니던 학교 위쪽으로 그런 산이 있었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잘 꾸며진 산책길도 없었을 것이다.
처음 올라갈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더 만족이 컸던 걸까?
서울 한복판 도심에서 겨우 10분 정도 발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마치 제주도 수목원이나 산림욕장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도심 속 울창한 산책로는 뜻밖의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나무들이 그 자리에 푸르른 녹음의 찬란한 옷을 입고 나를 반겨주듯 숲을 이루며 서 있었다.
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나는 사람의 지치고 위로가 필요한 마음에 쉼과 위로를 주고 있었다.
중요하고 귀한 손님을 만날 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맞이하는 것처럼,
나뭇잎이 입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옷을 입고 햇살이라는 조명을 받으며 나를 맞이하는 것 같다.
그렇게 그 숲길은 귀한 사람을 대접하는 레드 카펫 같이 내 앞에 펼쳐졌다.
오르는 길 중간에 있는 벤치는 지치고 힘든 사람을 위해 언제든지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나도 누군가 지치고 힘들 때 와서 앉아 쉬어 갈 벤치와 같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힐링 스폿이 숨어 있는지 몰랐다.
그것도 그렇게 힘겹게 다녔던 중학교 바로 뒤에...
오늘 안산 자락길을 걸으며 길의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길에는 언제나 방향성이 있고 또 길은 언젠가는 끝난다.
인생의 길도 어딘가를 향해 가는 방향이 있고, 또 언젠가는 그 길도 끝이 난다.
요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라고 많이 말한다.
모두 방향을 중요하게 여기더라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방향이 어긋나기도 한다.
그런 때는 여러 정보와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결국 내 안에 나침판을 스스로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혼자 걷는다.
어려서는 부모가 많은 것을 대신해 줄 수 있다.
또 우리가 성장하면서도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은 ‘나’다.
그 방향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 소용도 없다.
그래서 ‘그냥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라는 핑계를 대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길에 끝이 있듯이 우리가 살면서 내가 오랫동안 하던 일을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수 있지만 그 시간은 내 인생이 멈추는 것이 아니다.
한 번쯤은 우리 인생에 방향에 대해 다시 나침판을 꺼내 방향을 점검할 시간이라는 신호등으로 여기면 된다.
인생이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방향을 향해 가더라도 내가 지나온 길이 의미 없지 않다.
그 길이 없었으면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었고, 내일을 향해 다시 출발할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혼자 걸으며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로할 힘은 나에게 있다.
어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주변에 몸과 마음에 쉼이 되어 줄 좋은 산책로는 많이 있다.
방향을 점검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 외로움의 동굴에서 산책을 하기 바란다.
가장 아름다운 연녹색의 옷을 입고 햇살의 조명을 받으며 나무와 꽃이 기다리고 있는 숲길을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