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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원 Jun 28. 2024

듣고 싶은 말과 하는 말


듣고 싶은 말과 하는 말          



살면서 많은 말들을 들으면서 살게 되는 어떤 말은 들으면 기분이 좋은 말이 있고, 듣고 나면 기분이 나쁜 말이 있다.

기분이 나빠지는 말을 들으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내가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하면서 사는가?'라는 것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누군가로부터 짜증 섞인 말과 화내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아침부터 그런 표정으로 짜증이 가득한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질 것이다.

나는 아침부터 가장 먼저 만나는 가족이나 동료에게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만일 내가 아침부터 자녀나 아내와 남편, 혹은 동료에게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화내듯이 말한다면 상대방도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서로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 대화는 서로에게 마음에 흠집을 내고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우리말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라는 말 중에 기분 나쁘지 않은 말이 거의 없다.

“왜? 내가 틀린 말 했어?”라고 하는 말이 틀리지는 않아도 기분을 좋게 하는 말은 거의 없다.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말도 기분을 좋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말은 거의 없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반대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보다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 프로가 있었다.

이 말은 그냥 코미디 프로의 제목이 아니라 의미 있는 교훈이다.

서로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체가 인생에 어떤 값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복이다.

웃을 일이 없고 짜증과 화가 가득한 마음으로 나오는 말도 그러한 말이 일상이라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짜증과 화는 아니더라도 말에 조소와 비하가 담겨 있어서 이야기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나의 말에 조소나 무시가 담겨 있다면 나와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도 기분이 나빠지게 될 것이다.

사실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일수록 서로 존중하고 예의가 필요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무례하고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얼굴을 마주 대하며 함께 하는 가족이나 동료가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관계라면 그 자체가 인생의 지옥과 같다.          



우리가 언제나 듣기 좋은 말과 기분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상대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해도 되는 당위성이 될 수는 없다.

충고나 맞는 말도 상대가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하거나 상대가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가는 말이 거칠고 무조건 우겨야 이긴다.'가 사람들의 신조처럼 느껴진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마음은 아랑곳없이 기분대로 함부로 말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결국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모든 곳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웃으며 기분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그런 반응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을 많은 듣기 원한다면 내가 먼저 그런 말을 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짜증이 가득하고 무례하게 남을 무시하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은 언제나 웃으며 상냥하게 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바꿔야 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말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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