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다녔다.
대부분 아버지가 군인이셨냐고 물어보는데, 정유회사에서 30년을 근무하시는 동안 초등학교 다닐 무렵 전국의 지사로 다니시면서 승진하시기는 했지만, 가족이 함께 이사 다니면서 그렇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부산에서 입학해서 1학년 2학기에는 서울로 오고, 2학년에는 대전으로 갔다가 3학년에는 다시 서울로 오고 4학년부터는 서울에 또 다른 학교에 다녔다. 그래도 4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주말마다 만나서 함께 놀았던 친구들은 지금도 가끔 함께 만나 추억을 나눈다.
또 중학교도 친한 친구들은 한 명도 배정되지 않은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은 가야 하는 곳으로 배정이 되어 아는 친구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모든 관계를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고등학교도 아는 친구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초등학교 입학부터 4학년이 되기까지 전학만 4번을 다니며 초등학교 4학년을 시작한 학교가 다섯 번째 학교이니 그전에 친구들은 한 명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친구들 가운데도 대학까지 인연이 이어진 몇 친구는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지만, 중학교 시절의 친구는 남아있는 친구가 없고, 학교 자체도 없어져 동문회와 같은 것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 이후에도 한 직장을 오래 다니거나, 한 분야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한 분야에서 깊이 있게 인맥이 형성될 기회도 없었다.
이러한 내가 자라온 성장 배경은 나에게 어려서부터 이별과 헤어짐에 대해 익숙해지고, 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삶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성장 배경 과정으로 인해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나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어떤 새로운 환경에도 쉽게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여기기에 그러한 과정을 겪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만남을 경험하고, 또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지만 많은 헤어짐을 경험하면서 살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헤어짐이 힘들어서 사람들과 가능한 적당한 거리를 두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만남 자체를 힘들어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외향적이거나 워낙 사교적이어서 사람들과 쉽게 잘 친해지는 성격은 아니다. 새로운 어딘가에 가면 처음부터 사람들 눈에 띄거나 활발하게 나서지 않는다. 그래도 성장한 배경으로 인해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체가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고, 또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전에 관계들이 단절되는 것에 대해 너무 마음이 힘들거나 어렵지 않게 되었다.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것으로 인해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회성 결여가 발생하는 것은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발생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형성에 대한 어려움은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힘든 것이고, 관계가 어려워 점점 사람들과의 관계를 꺼리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내 삶에 수많은 전학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숙명과 같은 어린 시절은 지금 나에게는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선물과도 같다. 그 시간에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을 통해 적어도 새로운 만남이나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아무 문제나 상처가 없이 어른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린 시절에 겪은 여러 아픔과 상처를 누군가는 극복하며 자신의 강점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평생 자신에 현재의 문제를 과거에 자신이 겪은 것을 탓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극적으로 성공한 많은 인물이 어린 시절에 큰 어려움을 겪었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그 과정을 겪으면서 그 환경을 극복한 힘을 자신의 강점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내가 어린 시절 겪은 성장 과정이 지금도 내 인생에 돈 주고 살 수 없는 내 성품과 성향이 되었다.
나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과거를 대하는 내 마음은 바꿀 수 있고, 그 시간을 통과한 상처마저 그러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을 도울 강점으로 바꿀 때 과거의 상처나 힘든 과정은 오히려 내 인생에 보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