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매섭고 혹독하다.
지난여름 내내 한 번도 빈틈을 주지 않고 습식 사우나와 같은 찜통을 만들더니 추석이 다가와도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급기야 어제오늘은 태풍이 온 것도 아닌데 이틀간 쉴 새 없이 비를 퍼붓고 그중에 어떤 시간에는 동남아에서 경험한 스콜과 같이 집중 호우처럼 퍼부으며 끝까지 혹독한 그 캐릭터를 잃지 않는다.
이번 여름은 일찍 시작한 장마가 끝나도 단순히 덥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계속 축축함을 잔뜩 머금은 공기가 계속되어 질린다는 마음마저 갖게 했다.
7월 말에 적도 근처인 인도네시아를 며칠 다녀왔는데 아침에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도 동남아인 인도네시아보다 더 습하고 덥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의 인생의 계절도 그렇다.
때로 우리 인생도 매섭고 혹독한 계절을 지나게 된다.
습식 사우나에서 5분 정도 땀을 흘릴 때는 괜찮지만, 거기를 벗어날 수 없다면 마음까지 숨이 막힌다.
끝날 것 같지 않고, 벗어날 수도 없을 것 같은 혹독한 계절의 끝에 앞을 바라볼 힘도 없어지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보면서 이 교훈의 감각이 마음에 새겨져 있기에 마음을 먼저 그 계절에 갖다 놓고 견딘다.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죽을 것 같은 그 시간이 절대 우리 인생의 끝이 아니다.
아무리 힘든 계절을 통과할 때도 이제 조금만 지나면 다시 시원한 계절이 온다고 믿어지면 견딜만하다.
그러나 ‘더 이상 다음은 없다.’라는 낙심이 마음에 찾아오면 버티기 힘든 절망이 되기도 한다.
3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결국 코로나에 걸려 일인 격리 중환자실에 2주나 있었던 적이 있었다.
주말에 열이 40도까지 나기 시작헀는데 월요일에 검사를 받고 수요일에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5일을 40도 가까운 고열의 상태를 견뎠다.
당시 폐 기능이 1/3 이상 손상이 되고 산소 포화도도 급격히 떨어졌었지만 결국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그다음 해 건강 검진 때 엑스레이를 찍고 페이 이상이 없냐고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반문을 하실 만큼 회복이 되었다.
견디고 나면 고통과 상처보다 ‘하루하루 숨 쉬며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감사로 남는다.
'중꺽마'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로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이 여름에 '중꺽마' 하고 이제 가을의 문턱에 섰다.
이 여름에 대해 '중꺽마'하며 이겼듯 우리 인생의 혹독함에 대해 다시 '중꺽마'의 마음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지금까지 인생에 많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잘 견디며 이겨왔다.
앞으로도 문제를 내 힘으로 이기지는 못할 때라도 잘 견디며 그 계절이 지나가고 기다리던 계절을 맞이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