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장인 장모님 댁 이사를 하였다. 그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바로 건너편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다.
살던 동네가 바뀐 것이 아니라, 집만 바뀐 것이지만 혼자 계신 치매 초기 증세의 장모님에게는 너무도 낯설다.
그래서 이사하는 날부터 아내가 당분간 장모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 잠시 집을 비웠다.
닷새가 지난 오늘, 아내가 있을 때는 오히려 공간이 넉넉했던 냉장고가 가득 찼다.
처음 하루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일단 내가 혼자 있으면서 먹을 것을 사서 냉장고를 조금 채웠다.
화요일에는 아내가 낮에 잠깐 와서 반찬들을 만들어 놓고 갔다.
수요일에는 혼자 한 팩씩 꺼내 데워 먹으려고 주문한 뼈 없는 갈비탕이 도착했다.
어제저녁에는 라볶이와 생연어 샐러드로 혼자 저녁 식사를 했다.
오늘은 낮에 처갓집에 잠시 들려서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아내가 다시 반찬을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궁채 볶음, 양념깻잎, 우엉 볶음과 같은 것인데, 이미 집에도 멸치볶음과 다른 밑반찬들이 있다.
그리고 반찬을 넣어 놓으려고 집에 잠시 들렀는데, 택배가 와 있었다.
예전에 라오스에 몇 년을 살 때 그곳에 코이카 단원으로 있으면서 가족처럼 지냈던 친구가 뼈 없는 족발을 보내왔다.
라오스에 있을 때도 혼자 지내니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며 아들의 형 노릇도 했던 친구다.
이것까지 냉장고에 다 넣으니, 냉장고가 가득 찼다.
잠시 혼자 지내도 굶을 걱정 없이 일명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 된다.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일컬어 ‘먹을 복’이라고 자랑한다.
워낙 직접 해서 먹는 걸 좋아하니 나이가 더 들어도 아내가 차려주지 않으면 못 먹을 인생은 아니다.
그래도 장모님께서 어서 새집에 익숙해지시고 아내가 빨리 다시 집으로 오면 좋겠다.
냉장고가 가득 차도 그 음식이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