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집 공포증에 대하여
어느 날 평범하게 SNS를 스크롤하고 있었다.
유튜브 숏츠 영상을 별생각 없이 넘기던 중, 갑자기 한 영상이 나타났다.
"고래를 구조하는 감동적인 영상"이라는 제목이었다.
무심코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고래를 구조한다는데, 당연히 감동적이겠지. 아마 그물에 걸린 고래를 풀어주거나, 좌초된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영상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고래의 피부 표면에 빽빽하게, 정말 빽빽하게 덮인 따개비들. 울퉁불퉁하고, 크고 작은 것들이 불규칙하게, 하지만 너무나 조밀하게 붙어 있었다.
구조대원과 같은 사람들이 물을 뿌리며 따개비를 제거하는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영상을 보고 있는데 무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울렁증이 올라오고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급히 영상을 끄고, 앱을 종료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장면은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왜 이러지..."
손으로 팔뚝을 문질렀다. 소름이 가시지 않았다. 마치 내 피부에도 뭔가 붙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 이상한 건가?'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는 것들이, 왜 나만 이렇게 불편한 걸까.
특히 사람들이 "이거 봐봐, 신기하지 않아?"라며 그런 이미지를 보여줄 때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니 "나 그런 거 무서워"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고, 그렇다고 억지로 보자니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대부분 얼버무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되었다.
"트라이포포비아(Trypophobia) - 군집 공포증이란?" 군집 공포증?
'군집 공포증, 또는 트라이포포비아(Trypophobia)는 작은 구멍이나 돌기가 밀집되어 있는 패턴을 볼 때 불쾌감, 혐오감, 공포를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흔한 예로는 연꽃 씨방, 벌집, 따개비가 붙은 고래 피부 등이 있으며, 이러한 이미지를 볼 때 소름, 가려움증, 오한, 메스꺼움 등을 느낄 수 있다.'
바로 나였다. 기사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군집 공포증은 공식적인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현상이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는 진화적으로 위험한 것(독이 있는 동물, 질병, 기생충 등)을 회피하기 위한 본능적 반응일 수 있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기사를 읽은 후,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
"저도 고래 따개비 영상 보고 3일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연꽃 씨방 사진 보고 토할 뻔했어요. 주변 사람들은 이해 못 하더라고요."
어느 날 아들에게도 이런 소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그런다고 한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썼다.
"전 오랫동안 제가 예민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근데 이게 군집 공포증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증상이 있는 거구나, 하고요."
나도 똑같았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군집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런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이름을 알게 된 후, 나는 이제 그런 영상은 보지 않는다.
어쩌다 모르고 틀게 되더라도 금방 꺼버리고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군집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대처하면 좋다.
첫째, 영상의 썸네일을 먼저 확인한다.
요즘은 SNS나 유튜브에서 감동적이라는 제목으로 고래 구조 영상이 자주 올라온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무심코 클릭하지 않는다. 썸네일을 먼저 보고, 혹시 따개비나 군집 패턴이 보이면, 과감히 넘긴다.
둘째, '관심 없음' 버튼을 적극 활용한다.
알고리즘이 나에게 그런 영상을 추천하지 않도록, '관심 없음'이나 '이 채널의 콘텐츠 추천 안 함'을 누른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내 정신 건강이 더 중요하다.
셋째,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말해둔다.
친한 친구들에게는 "나 군집 공포증 있어서 벌집, 연꽃 씨방, 고래 따개비 같은 거 보면 진짜 힘들어"라고 미리 말해뒀다. 그러니까 그들도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게 됐다.
넷째, 만약 실수로 봤다면, 다른 이미지로 덮어씌운다.
가끔 피할 수 없이 그런 이미지를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빨리 다른 이미지를 본다. 귀여운 강아지 사진, 아름다운 풍경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그렇게 머릿속의 불쾌한 이미지를 빨리 지운다.
세상에는 '봐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이거 봤어? 완전 감동적이야!" "이 영상 꼭 봐야 돼!"
"왜 안 봐? 진짜 신기한데!"
하지만 우리는 불편하다면,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
감동적이라고 해서, 신기하다고 해서, 모두가 본다고 해서, 당신까지 봐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제 고래 구조 영상을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나는 보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군집공포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