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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원 Jun 27. 2023

모두에게 블루오션이 열리는 세상은 불가능한가?

획일화된 경쟁을 뛰어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두에게 블루오션이 열리는 세상은 불가능한가?

획일화된 경쟁을 뛰어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에는 어디에나 승자와 패자가 있고, 강자와 약자가 있다.

그건 아이들이 노는 어린이 놀이터에서부터 학교 교실과 나아가 사회 모든 곳에 있다.

경쟁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승자와 강자가 있고, 또한 패자와 약자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경쟁이 필요 없고 획일적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회란 승자와 강자가 패자와 약자에 대해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고, 

패자에게 다시 공정하게 인생의 경기에 임할 공정함이 있는 곳이다.

더 좋은 사회는 장래에 대한 다양성이 존중받고 그 다양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의 표면적인 모습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공정하고, 약자에 대한 보호 장치도 많아졌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이면의 현실은 암울하기도 하고 암담하기도 하다.     



무엇이 암울하고 암담하다는 것인가?     



첫째는 획일화되어 줄을 세워 경쟁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면 대학은 정말 학문에 뜻이 있거나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는 사람이 간다.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아도 다양한 직업이나 직종의 영역에서 인정받고 얼마든지 역할을 감당할 바탕이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대학 진학에 획일적으로 줄을 세우고 그 대열에서 이탈하면 실패한 것처럼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는 프로 스포츠와 같은 경우 오히려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이 보편화가 되기는 하였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대학을 향해 경쟁하며 줄 서지 않아도 인정받고 성공할 길들이 열려야 한다.



대학 진학에 대한 획일화된 경쟁보다 더 심각한 경쟁은 돈을 향한 맹목적인 경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영끌’이란 단어도 등장하며 부동산이든, 주식이나 코인이든 투자 광풍이 불고 있다.

많은 한국인이 남들과 자신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우월감에 빠지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런 맹목적인 경쟁의 대열에 들어서면 오늘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100억, 200억이라는 숫자에도 무감각해지는 현상에 대부분의 사람은 불안과 패배의식에 젖어든다.            



둘째는 각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다양성보다 획일화된 경쟁의 굴레를 벗으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다양성이 존중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나뉘는 세상이 되고 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회를 좋아하지 않아도 여전히 내 자녀는 그 경쟁의 굴레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는 획일화된 경쟁뿐 아니라 은퇴 후에 치킨집이나 카페 경쟁을 하다가 서로 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남들이 한다고, 그게 돈이 된다고 맹목적으로 다 같이 불나방처럼 그 길을 따라가는 사회는 결국 공멸이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것,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들이 존중받고 더욱 다양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셋째는 겉으로는 공정한 룰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불공정한 룰을 만들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공정함보다는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 지배한다.

우리 사회에 많은 영역이 겉으로는 공정한 룰이 있고 또 공정한 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이면에는 강자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의 세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청년 세대가 공정에 그토록 예민한 것은 이렇게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이면은 여전히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블루오션이 열리는 세상은 불가능한가?      


최근에 수능에 킬러 문항 논란을 보면서 여전히 획일화된 경쟁의 굴레의 늪에서 서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본다.

획일화된 레드 오션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마음에 피를 흘리며 불행하고 아파하고 있다.

지금의 구도에서는 학폭이나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도 해결이 안 된다.     

이제는 사회에 진출을 준비하는 세대에게서도,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는 세대에서도 다양성이 존중을 받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사회적 편견 없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100세 시대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세대들 가운데 획일적인 경쟁에서 나름 승자였던 사람이 더 고민이 많다.

화이트칼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면 너무도 할 수 있는 일이나 분야가 제한이 된다.

오히려 어떤 분야에 기술이나 자격증을 젊어서부터 준비하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인생 2막에 더 기회가 많다.     


이제는 사회에 진출하는 단계에서부터 맹목적인 대입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소질이나 마음에 따라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길이 열리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단순히 킬러문항을 유지할 것이냐 없앨 것이냐보다 어떻게 하면 경쟁을 넘어 다양성의 블루오션을 열어갈지를 다 같이 고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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