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투쟁이었다. 그 적이 바이러스이든, 혹은 그로 인해 파생된 공포이든 말이다.
우리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전 지구적인 불안을 체험했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러한 집단적 공황 상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4세기의 검은 재앙, 흑사병(Black Death) 때도 인류는 비슷한, 어쩌면 더 처절한 심리적 붕괴를 경험했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고 초연결 사회가 도래한 21세기에도, 우리가 느끼는 사회적 불안의 총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 안의 작은 창(Window), 스마트폰을 통해 불안은 더 빠르고 치명적으로 변이하고 있다.
무지(無知)가 낳은 광기 (14세기 흑사병)
1347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당시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갔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 병은 신의 형벌이자 알 수 없는 저주였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시기,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극단적인 집단 불안을 낳았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는 '희생양'을 찾았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이 퍼지며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었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며 신에게 용서를 비는 광신도 무리가 거리를 메웠다. 당시의 불안은 '정보의 부재'에서 오는 공포였으며, 이는 공동체의 결속을 파괴하고 타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정보 과잉이 낳은 혼란 (코로나19 팬데믹)
700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우리는 흑사병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였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은 순식간에 분석되었고, 백신은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불안의 양상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동양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증가했고, 특정 종교나 집단에 대한 마녀사냥이 온라인상에서 횡행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의 불안이 '정보가 없어서' 생겼다면, 현대의 불안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다시금 길을 잃었다.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 불안을 증폭시키는가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는 이 불안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소셜 미디어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여 불확실성을 줄일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불안의 증폭'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분명한 기제가 작동한다.
유튜브나 SNS의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한다. 만약 누군가 백신 음모론이나 경제 붕괴에 대한 영상을 한 번 클릭했다면, 알고리즘은 더욱 자극적이고 공포를 조장하는 콘텐츠로 그를 가둔다. 이는 '반향실(Echo Chamber)' 효과를 낳아, 왜곡된 정보를 진실로 믿게 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
인간의 뇌는 생존 본능 때문에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이고 위험한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이러한 본능을 이용한다. "평화로운 하루"보다는 "충격적인 진실", "곧 닥쳐올 재앙"이라는 헤드라인이 더 많이 공유된다. 즉, 불안이 돈이 되는 구조다.
과거에는 뉴스를 끄면 불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의 재난과 타인의 분노를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암울한 뉴스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둠 스크롤링'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 전체의 피로도를 높인다.
'디지털 거리두기'와 심리적 방역이 필요한 때
흑사병 시대의 인류가 무지 때문에 서로를 공격했다면,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왜곡된 정보와 알고리즘 때문에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불안에 대처하는 인간의 DNA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우리를 물리적으로 연결해 주지만, 정서적으로는 고립시키고 공포를 전염시킨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이러스를 막는 마스크뿐만이 아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와, 알고리즘이 주입하는 불안에서 벗어나 잠시 로그아웃할 수 있는 '디지털 거리두기'가 절실하다.
사회적 불안을 잠재우는 것은 더 빠른 와이파이가 아니라, 냉철한 이성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