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것들이 서로를 지킬 때 일어나는 기적 (천 개의 파랑)
천선란의 소설 『천 개의 파랑』은 장르 상은 SF에 속하지만 “우리의 가장 따듯한 SF”라는 책 소개처럼 효율이 지배하는 차가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중심에는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느린 '심장'들이 모여 있다. 영화 E.T.처럼, 이 소설은 주류에서 밀려난 존재들이 서로의 빈틈을 발견하고 그 자리를 메워주는 눈부신 연대의 기록이다.
소설 속 세상은 더 빨리 달리는 말, 더 정확한 로봇, 더 유능한 인간만을 원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경주마 '투데이'가 다칠까 봐 스스로 말에서 떨어져 몸이 박살 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현대인은 타인보다 앞서기 위해 자신을 치장하고 경쟁하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콜리의 오류는 우리에게 묻는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멈춰 서는 것이 정말 오류인가?" 소설은 가장 로봇다운 '효율'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가장 인간다운 '공감'이 시작됨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인간, 동물, 로봇이라는 경계가 허물며 서로를 위한 위로의 주체가 된다.
콜리(로봇)는 부서진 몸으로도 투데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다정한 관찰자이다.
투데이(동물)는 관절이 망가져 도축 위기에 처했지만, 콜리와 교감하며 다시 달리는 법을 잊지 않는 말이다.
연재와 은혜(인간)는 로봇을 고치고 말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자매다.
우리는 흔히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봐 벽을 세우고 서로를 밀쳐낸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부서진 조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너를 지켜줄게"라는 말 대신, 그저 옆에 머물며 보폭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안식으로 바뀐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천 개의 파랑'은 콜리의 시각 센서에 담긴 하늘과 바다의 무수한 푸른빛을 의미한다. 콜리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한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부서진 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부서진 틈 사이로 서로의 빛이 새어 들어올 때,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콜리는 혼자 남겨진 폐기 직전의 순간에도 자신 안에 쌓인 아름다운 기억(파랑)들을 누릴 줄 알았다. 그 고독한 풍요로움이 있었기에 타인(투데이와 자매)에게 그토록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천 개의 파랑』은 '빨리'와 '승리'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한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부서져도 괜찮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 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당신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소설 또한 '함께 걷는 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최고의 위로 서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