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잎 비 앞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산책을 하다가 잠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맑고 화창한 봄날 벚꽃 잎이 비처럼 내리는 모습을.
겨우내 앙상한 가지에 웅크리고 생명을 품고 피어난 꽃잎.
나무는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도 쉬지 않았다.
오히려 추위를 견디며 꽃을 터뜨릴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가 그 축적했던 에너지가 꽃으로 빛을 발한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이유는 수정(번식)을 돕는 곤충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다.
꽃이 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단계인 '잎'과 '열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겸손한 양보다.
꽃잎이 흩날리는 순간에도 나무는 이미 초록의 생명력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꽃이 진 자리에는 파릇한 잎이 돋아난다.
이제 연초록의 잎은 여름 내내 무성한 잎은 햇빛을 받아 나무를 살찌우고, 내년에 피울 꽃눈을 만들 것이다.
이때 흡수한 햇빛과 수분은 나무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내년 봄의 찬란한 만개를 위한 또 다른 준비인 것이다.
올해 피어난 벚꽃은 작년과 똑같은 반복이 아니다.
올해의 나무는 작년보다 한 마디 더 자랐고, 나이테 하나를 더 품은 생명이다.
나무가 매년 꽃을 피우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지난 사계절 동안 나무가 겪은 '질적인 축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이와 같다.
오늘 그 찬란함을 여린 새싹에게 양보하는 꽃잎 앞에 마음이 겸허해진다.
언제나 찬란하기만 꿈꾸는 인생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을 위한 마중물이 되는 것이 지혜다.
벚꽃 잎 비를 보며 혹독한 겨울도 꺽지 못하는 더 단단한 생명의 지혜를 베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