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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원 Aug 04. 2023

나에게 힘을 준 매미


나에게 힘을 준 매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아 예술에 전당에서 세계 합창제가 열렸다.

합창제 마지막 날 공연을 보러 갔는데 좌석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게 되었다.

1부 순서가 마무리되고 2부에는 그 합창제에 참가한 모든 출연자 500명가량이 함께 나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합창을 하는데 그 소리에 그야말로 심장이 울린 만큼 압도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 아침마다 매미의 우렁찬 합창을 들으며 35년 전 세게 합창제의 감격이 떠오른다.

7년을 땅에서 지내다가 이 여름 2주 정도의 짧은 시간을 세상에 나와 아침마다 들려주는 합창은 강렬하다.

오늘 아침에 그토록 울었던 매미 가운데 많은 수는 오늘이 마지막 합창에 참여한 날이었을 것이다.     



한여름 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쉽지만 일생의 마지막 순간에 온 힘을 다해 합창을 하는 매미의 소리는 마음도 깨운다.

이른 아침부터 땀이 나는 날씨지만 매미들의 합창을 들으면 ‘제 인생에 마지막 합창을 들으며 힘을 내세요.’라고 외치는 듯하다.

어찌 그 소리를 듣고 덥다고 투덜거리기만 한 채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겠는가?     



그 어느 여름보다 장마도 길었고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그래서 아침에 매미의 합창은 발포 비타민과 같다.

시원한 물에 발포 비타민을 녹여 마시면 그냥 비타민 보다 바로 힘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장 지치기 쉬운 여름의 끝에서 매미 소리는 이미 우리 마음을 가을로 향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매미의 합창을 들으며 이미 청명한 하늘을 보며 마음을 가을로 보낸다.

아마도 이번 가을에는 이 여름을 열심히 합창으로 나에게 힘을 준 매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것 같다.     



다른 소리 같으면 매미의 울음소리는 귀를 막을 만큼 소음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매미의 합창은 크면 클수록 멋진 오케스트라의 교향곡 클라이맥스처럼 다가온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사랑의 짝짓기를 위한 소리라고 하지만 그 생존본능이 우리 마음에 생존본능을 깨우는 걸까?      



아침에 내가 걷는 길에 매미 울음소리는 나에게 에너지와 같았다.

이 여름 매미의 합창이 나 마음에도 힘이 되듯 내 안에서 나는 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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