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업무를 마치기 전 미리 잡혀있던 일정이 연기됐다. 상대측에서 갑자기 급한 일정이 잡혀 다음주로 저녁 일정을 미뤘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한 것이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저녁 일정을 소화해 몸이 힘든 가운데 상대방에서 연기하자고 하니 나로써는 너무나 고마웠다. 일정을 연기하자고 하고 그 즉시 와이프한테 카톡을 보냈다. "저녁 일정 연기됐어. 바로 집으로 갈게"라고.
이 카톡이 가자마자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다. 자기네 직원들 오늘 번개를 한다고 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고. 가서 늦게까지 잘 놀다오라고, 딸 아이는 내가 보겠다고 말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을지로3가역에서 3호선을 타려고 가는데, 지하철이 오지 않는 것이다. 이미 플랫폼엔 사람들로 가득한 상황. 한참을 기다리는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매봉역에서 철로에서 불빛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사고 처리를 하겠다고 했지만 지하철은 2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가까스로 지하철을 타도 한 정거장을 가는데 20분이 넘게 소요됐다.
그래도 조금 일찍 퇴근한 탓에 딸 아이 바이올린 학원 마치는 시간까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못가 못 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하철이 압구정역까지만 운행을 안 한다며 승객 모두 내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을 와이프한테 전달했고, 와이프는 아쉬워하며 자기가 딸 아이를 데리러 간다고 했다.
압구정역에 내려 집까지 갈 수 있는 지하철역인 압구정로데오역까지 걸어갔고, 그 역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한 시간을 넘게 지하철을 탄 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와이프와 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서둘러 내려 와이프의 짐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데, 와이프의 표정이 어두웠다. 자신도 직원들과 어울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아쉬워하는 와이프 앞에서 최대한 몸을 사린 채 집에 돌아와 딸 아이를 목욕시키고, 저녁을 먹은 후 쉬는 것 없이 집안일을 서둘러 했다. 집에 돌아오는 데 3시간 가까이 걸려 힘들었지만, 와이프의 기분을 더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힘든 내색도, 짜증도 안 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저녁 일정이 많은 직업 특성상 와이프가 회식을 하거나 지인을 만난다고 하면 최대한 일정을 조절해 와이프에게 시간을 주려고 한다. 내가 육아를 같이 한다고는 하지만, 와이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고, 와이프 역시 잠시 육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안다. 나 나름대로 가끔 저녁 일정을 하고 집에 돌아와 힘들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와이프에 비하면 힘든 게 아니니...
울 대장~ 내가 저녁자리는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리고 자기 저녁 일정 있다고 하면 최대한 일정 조정할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그리고 짜증도 안 내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