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쯤 와이프한테 카톡이 왔다. 으뜸이가 2학년때부터 가려는 다른 영어학원인 '제이리'의 테스트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스피킹, 리스닝, 라이팅, 리딩 총 4개의 테스트 항목 가운데 리딩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와이프가 딸 아이의 영어학원을 변경하려는 이유는 시간 때문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폴리'는 1학년 때는 2시30분부터 수업이 시작돼 학교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바로 셔틀버스를 타면 되지만, 2학년부턴 1학년 수업이 끝난 4시반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학교에서 하교하는 시간이 1학년과 2학년 모두 동일한데, 영어학원은 시간이 더 늦어져 중간이 비는 것이다.
중간에 다른 학원을 보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수업이 끝나는 6시 이후로 다른 학원을 보내는 게 딸 아이나 부모인 우리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아직 1학년인데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보내야 하는 건 나 뿐 아니라 와이프도 반대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제이리'의 경우 지금 폴리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이 하교 후 바로라 보내려고 한 것인데, 아쉽게 딸 아이가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된 것이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와이프와 테스트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와이프는 속상해하며, 나의 육아휴직 기간 중 딸 아이가 힘들어 해 리딩 학원을 관뒀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푸념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나 역시 마음이 안 좋았다. 딸 아이가 힘들어 했을 때 누구보다 와이프한테 반기를 든 게 나였으니 말이다.
다시 다음주부터 다른 리딩 학원에 가기로 했고, 집에서도 잘 봐주면 더 잘해질 것이라고 와이프를 달래는데, 딸 아이가 자기의 방에서 나왔다. 둘이 머하냐고 묻는 딸의 머리를 쓰담으며, "으뜸이 잘하고 있어. 근데 영어책을 조금 더 집중해서 보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응 알았어"라고 쿨하게 말하는 딸 아이.
아직 1학년 밖에 안 된 딸 아이가 학원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게 싫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친구들은 이미 더 높은 레벨로 나아가고 있는데, 딸 아이만 뒤쳐진 것 같은 느낌에 조금 더 다그치게 된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딸 아이가 없었을 때 부모들의 아이들 학업에 대한 지나친 강요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막상 딸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와이프와 딸 아이의 학업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딸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를 생각하자고 말하곤 한다. 딸 아이가 나오고 나서 와이프는 처치를 받고 아빠인 내가 간호사분과 딸 아이의 신체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 때의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제발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며 간호사분과 같이 손가락, 발가락, 입천장을 확인했던...
이 모든 게 부모의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딸 아이가 다른 아이들만큼은 해줬으면 하는 바람. 이것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 딸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옆에서 잘 케어해줄 수 있는 지혜가 내겐 부족한 것 같다.
울딸~ 아빠는 울딸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혼낼 생각은 없어. 다만 지금처럼 울딸이 열심히 하는 그 과정만 잘 지켜주면 말이야. 공부보단 인성이, 그리고 건강이 우선이야. 지금도 울딸 너무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하면 아빠는 더 바랄게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