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에서 웹/모바일로
저는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증권회사가 돈을 많이 벌 때였고, 집안이 어려웠었기에 돈을 많이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증권회사에 가려면 통계과가 괜찮다며 함께 가자고 꼬드겼던 친구의 권유에 과를 선택했었습니다(함께 가자고 하더니 이 친구 녀석은 막판에 말도 안 하고 다른 전공으로 바꿔서 엄청 배신감에 치를 떨었었습니다 ^^;)
IMF 전 호황기 때였기에 사실 졸업 전에 이미 대기업 계열사에 취업이 결정 날 수 있었고 그렇게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통계적인 분석과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를 할거 같아 보였던 보험사에 출근했더니 저는 해외출신도 아니고 핵심인재가 아닌 "뚝심인력"으로 분류된 인력이어서 일선 지점과 영업소에 배치되어서 근무를 시작했더랬습니다.
그때 처음 끝없는 인쇄물로 시작해서 인쇄물로 끝나는 보험 생태계에 숨이 막히고 답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홍보물과 무슨 말인지 현업에 있어도 알기 어려웠던,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식 보험용어들로 가득했던 상품 관련 문서들과 약관들, 영업을 위해 매일, 매주, 매월, 매 분기와 반기마다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문서들이 제가 기억하는 보험영업 현장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사연들을 가지신 아주머니들이 대다수였던 영업조직 설계사 분들에게 이런 영업자료들을 설명하기 위해 각종 교육과 강연, RP(Role Playing)라고 하는 판매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서 연습까지 쉬지 않고 가르치고 암기시키고 하는 것이 모든 보험사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해서 50여 년 이상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시다 보험사에 덜컥 오신 아주머니들이 일본식 계약용어 가득한 보험상품 자료들을 제대로 이해하셨을까요?(당시 평균 보험사 설계사분들의 연령이 40대 중후반~50대 초반이 주류였었습니다 : 10년 뒤 보험설계사들이 젊어졌다는 전북일보 기사 참조 https://www.jjan.kr/article/20110614399875)
IMF를 지나면서 급격한 경기 침체와 불경기로 청년 취업자리들이 급감한 상태에서 보험사들은 이 젊은 설계사 조직에 집중해 젊은 대졸 설계사들이 급격히 늘어났었습니다. 일부 외국계 보험사들이 국내에 진출해 남성 대졸 중심 설계사들을 높인 것도 이 시기 부터였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장에 남성과 고학력 인력들이 많이 들어와서 좀 더 그럴듯하게 잘 포장해서 상품을 팔 뿐이지 보험사의 판매방식이나 내용은 더 철저히 인쇄물과 각종 어려운 용어들로 포장된 철저한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시장이 2007년부터 태블릿 중심의 모바일 청약이라는 것이 시장이 태동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업계 최초로 이 변화를 표방하고 설명하면서 제가 제시했던 슬로건은 "고객 앞에서의 영업에서 고객 옆에서 영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분사사로 나와 있었기에 모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있을 때였어서 모회사에 열심히 이 변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설명했지만, 현업 선후배들이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인쇄물로 해도 잘되는데, 왜 그렇게 어렵게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고 인쇄물도 이해를 못 하는 설계사가 태반인데, 고객에게 낯선 태블릿으로 영업자료를 설명하는 게 오히려 더 방해만 되지 않겠냐는 게 주 이유였었습니다.
사정사정해서 1개 영업소를 샘플로 해서 시범운영을 해보자고 설득해 겨우 했던 게 기억납니다.
현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고객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었습니다.
그래도 현업들은 시큰둥했었고, 그룹 IT 계열사 담당자들로 다들 비웃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정사정해서 이번엔 1개 지점 약 500여 명이 사용해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워는 했어도 현장반응도 좋았고, 고객들의 반응도 상당히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때에도 갸우뚱하며 긍정적이진 안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았었고 그 뒤에는 1개 본부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했었고 그때에서야 인정하게 되어 그다음 해에 전사 적용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 제안하고 시작하고 3년째가 되어서야 전사 확대가 되었었습니다.
그렇게 제 모회사 전사확대가 된 때가 2009년이었는데, 지금은 태블릿은 기본 영업도구가 되어 있고, 이제는 모바일폰을 가지고서도 영업을 전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자분들이나 일반분들은 단순히 시장에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들어왔기에 그걸 도구로 쓴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변화는 보험시장에서는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였고 보험영업의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하겠습니다.
설계사들에게만 이해시키면 됐던 보험 판매자료들과 안내자료들, 상품자료들과 상품 약관 자료들이 직접 고객들이 보고 판단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고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되고 풀어져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전보다 고객들이 더 이의제기를 하기도 용이해졌고 고객을 납득시키기 위해 더 쉬운 용어와 분명한 내용으로 정리된 상품 자료들은 설계사들도 이전보다 더 이해하기 쉬워지게 되어 불완전 판매를 개선하는 효과가 생겨 났습니다.
그러면서 보험사들이 자기들 유리하게 블랙박스로 감춰서 대충 뭉갤 수 있었던 영역이 사라지게 되었고, 비슷하게 카피해서 적당히 설계사들에게 푸시해서 팔아도 되던 상품으로는 중소형 사는 대형사들과 경쟁이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상품 경쟁력을 가진 중소형 회사는 조금 더 성장하게 되는 반면, 그렇지 못했던 중소형 사는 도태되거나 망하기도 하는 등 변화가 다각적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보험사와 설계사들에게는 언론과 고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변화가 몇 가지 일어나게 됩니다.(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