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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Aug 21. 2023

내 순서는 언제일까?

인생 한방이라는데. 

내가 19살 첫 취업을 했을 때부터 로또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당시엔 한게임에 이천 원씩이었는데 한 장에는 다섯 게임이 들어갔고 그러면 딱 만원이었다. 


20년 전의 일이니 당시 월급으로 50만 원도 못 받던 내게 만원은 제법 큰돈이어서 지금처럼 자주 사지는 못했지만 딱 한번 무려 삼만 원을 투자해 로또를 구입한 적이 있었다. 


왜 삼만 원이었는가 하면 인생은 삼세번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니 로또를 산다면 응당 세장이 아닌가 하는 웃지 못할 믿음으로 인한 낭비였다. 


그게 20살의 몇 월이었던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월이 겹치고 겹쳐 로또 당첨금액이 최대치라며 방송에서 연일 뉴스가 나오던 시기였다.


당첨만 되면 천억이라는 둥 바로 대한민국의 1%가 될 수 있는 금액이라는 둥 회사에서 오가는 사람들마다 말이 많았고 그때 회사 사람들 치고 로또를 구매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만나면 로또이야기를 했고 서로 당첨되면 차를 사준다는 둥 사표를 부서장 얼굴에 던지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마치 정말 당첨이 될 것처럼.


복권의 의도와 유래가 어찌 됐든 복권의 순기능은 그런 게 아니겠는가 그저 작은 돈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일주일.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이었는가 보다. 그 주에 당첨자는 10명이 넘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비록 내 3만 원은 5등조차도 되지 못한 꽝으로 날아갔지만 회사의 누군가는 3등이라며 회사 앞에서 파는 3마리 만 원짜리 트럭표 바비큐를 회사에 쭉 돌렸고 탕비실에 여직원들 몇이 둘러앉아 "안될 줄 알았어~" 라며 닭고기를 뜯던 기억이 난다. 

기대는 컸지만 실망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로또는 한 게임당 천 원이 되어 한 장에 다섯 장을 꽉 채워 사도 오천 원이 되었다. 


잠깐 느꼈던 희망은 제법 달콤한 것이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매주는 아니더라도 제법 꾸준히 로또를 구입하고 있다.


한주에 오천 원에서 만원. 이따금씩 넓은 바다를 헤엄친다던가 혹은 대통령을 만난다던가 돼지몰이를 하는 등의 좋은 꿈을 꾸고 나면 통 크게 오만 원어치를 구입하기도 한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금액이지만 신기한 것이 낙첨이 되어 종이조각이 되어도 실망이 크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최대 당첨금액은 4등. 오만 원에 그쳤지만 그 순간엔 그것만으로도  팔짝 뛸 만큼 기뻤다. 


어쩔 때는 열게임을 사도 숫자가 요리조리 다 피해 가서 그 주에 나온 번호가 하나도 없는 종이쪼가리를 볼 때면 그 번호만 피해서 사는 능력이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 소름 끼치는 재능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했던가. 

그다음 주에는 내가 사는 번호를 피해서 사기도 하지만 역시나 꽝이라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될놈될이다. 난 안될 놈이고 


로또 당첨번호를 검색하다 보면 연관검색어로 번호를 추천해 주는 사이트들을 즐비하게 볼 수 있다. 


한 번은 혹해서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에 망설임 없이 닫았다. 


그런 사이트들에 올라와있는 당첨후기에는 대부분 공통점이 있는데 사업실패로 혹은 사기로 혹은 기타 등등의 많은 사유들로 인생의 끝자락에 서있었는데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로또에 당첨되었다.라는 내용이 거의 비슷하게 적혀있었다.


그때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렇게 삶의 끝자락에 먹고 죽을 돈도 없는 상황인데 로또사이트 유료결제를 할 돈은 있다는 건가? 싶어 콧웃음을 치고는 꺼버렸다.




살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불현듯 떠오르는 그런 생각들이 있다. 그 후기가 그랬다.


너무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날 시장가는 길목에 있는 로또판매점에서 로또를 구입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후기가 생각났다. 나도 지금 되게 힘든데. 행운이 간절함의 기준으로 순서를 정해 찾아오는 거라면 나에게도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리고 낙첨된 로또를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 덜 간절한가? 아직 살만한 상태인 건가? 


물론 당첨의 기준이 그럴 리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로또는 온 국민이 사는데 그렇다면 이건 온 국민의 소소한 계모임이 아닌가? 순서를 기다리면 언젠가 내게도 차례가 돌아오려나. 


그렇게 생각하면 또 슬쩍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는 기약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로또를 사고 나면 발표된 뒤 월요일 출근을 하면 로또 당첨번호를 확인한다. 


그리고 나의 재주는 다시 한번 능력을 발휘했다.  대각선으로 번호가 맞는 것도 나의 멋진 능력 중 하나이다.


역시....



계주가 날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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