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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13. 2023

주관적인 행복.

내가 불행하다고 해서 네가 더 행복한 것은 아니야. 

하루가 고단하다. 그것은 사실이다.


밤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시간은 거짓말처럼 지나서 요란한 알람에 눈을 뜬다.

세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출근을 한다.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저녁상을 차리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단지 이것만 했을 뿐인데 10시가 훌쩍 넘어버린 시계에 놀라는 일이 일상이다. 

그때부터 밀린 집안일(설거지, 청소, 정리 등)을 하고 씻으려고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면 거의 다 지워진 화장을 얼룩덜룩하게 뒤집어쓴 내 얼굴이 보인다.

개운하게 씻고 나서 '이제 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면 풀린 긴장에 졸음이 밀려들어와 까무룩 잠이 들어 버린다.


결혼 전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드는 사람이 그렇게 신기했더랬는데 평생 가지고 살아왔던 불면증은 사치와 같아서 이제는 잊힌 지 오래였다.


이건 그냥 나의 생활이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평일에 함께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공원에라도 다녀오고 나면 어느새 일요일 저녁.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 한 달, 일 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몸은 고단하지만 그러고 나면 한주를 잘 보낸 것 같아 뿌듯한 기분도 든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지만 고되긴 해도 이 자체가 불행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힘들지?"


안타깝고 애처롭다는 마음이 한가득 담긴 눈망울로 나에게 건네는 저 한마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다시 한번 말을 건넨다.


"아니야. 힘든 거 다 알아. 힘들다고 해도 돼. 괜찮아."


아... 이거구나.

그래 힘이야 당연히 든다. 근데 누구나 세상 사는 게 힘들지 않나? 하지만 저 눈빛과 물음이 그런 의도로 던진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리 눈치 없는 나라도 느낄 수 있었다.


저 질문은 자기만족에 쓰이는 재료 같은 것이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모든 여건이 나보다 나은 자신이 좀 더 나은 상황이라고 믿기 위해서. 

내가 불행하고 자신은 그에 비하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으니까.

내가 적어도 쟤보다 예쁘다고, 날씬하다고.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자신감으로 삼은적도 있다. 어릴 땐 그랬다.


"난 괜찮아."


나의 대답에 말 안 해도 안다는 듯이 날 안고 내 등을 두드린다.

난 그냥 답하기를 포기했다. 내 대답과 관계없이 이미 상대에게는 답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행복의 기준은 뭘까? 


흔히 말하는 흙수저 집안에 태어나 내세울 만큼 뛰어난 면이 없는 배우자와 결혼해 아등바등 겨우 집 한 채. 그마저도 대출이 반이상이고  그거 갚겠다고 아등바등 맞벌이. 

없는 집에 아이가 셋이나 있고 세 아이 중에 심지어 한 아이는 장애다. 


그렇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부자가 아니어도 사랑받으며 자랐고 남편이 빼어나게 잘난 것은 아니지만 사랑으로 이룬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하다. 지금도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눈치 보지 않고 지낼 내 이름으로 된 집이 하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다. 

세 아이덕에 집에 웃음이 끊이지 않고 온 가족이 건강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안타깝지만 그 와중에 착하고 순한 다정한 아이다. 


그러면 나는 불행한가 행복한가? 

굳이 따지자면 나는 때때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날도 분명히 있지만 대체적으로 행복한 편이다. 





어린 날엔 즐거운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밤새 친구들과 자지러지게 떠들고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온 동네를 휘저으며 웃고 즐기고 떠들고 마시는 것.

그날들이 즐겁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 하루가 지나면 왠지 허무한 기분이 들곤 했다.


행복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어느 날 스으윽 새겨졌다. 

어느 날 길다가 들른 포장마차에서 먹은 떡볶이가 기대보다 맛있을 때, 잘못 든 길에서 지쳐 들른 카페테라스에 앉아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실 때, 놀이동산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탄 리프트에서 고개를 들었는데 기대치 못한 맑은 하늘을 마주했을 때, 잠이든 아이의 잠꼬대가 너무 재미있을 때, 퇴근하고 들어선 집에 아이들이 저 거실 끝부터 "엄마~!" 하며 달려와 해일처럼 안겨들 때. 난 행복이라는 기분을 선명히 느낀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 짧은 순간순간이 각인처럼 행복이라는 느낌으로 새겨지고 그런 순간순간들이 힘든 날을 지탱할 힘을 준다. 


그러니 행복은 누군가에 비해서 라는 기준으로 판단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은 상대적인 게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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