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다 Sep 15. 2023

혼밥이 좋은 나이.

대부분의 직장인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마도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이 아닐까.

나 역시 그렇다.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회사의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이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채 10명이 되지 않는 작은 회사이고 그러다 보니 식사를 배달시켜 먹는 편인데 12시쯤 배달이 온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회의 테이블이 앉아 밥을 먹는다.


12시 정각.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맛있게 드세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무실을 나서자 형식적인 뉘앙스의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들이 어깨너머 들려온다.


함께 식사를 하는 동료들을 두고 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아침엔 정신이 없어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경우가  많았고 저녁은 식구들 저녁을 차려서 아이들과 씨름하며 먹이고 나면 도무지 뭘 먹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니 하루에 한 끼 오롯이 집중하며 나를 위해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점심뿐이건만 회사로 배달이 가능한 식당들은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내게도 별로라고 생각될 정도로 비싸고 맛이 없었다. 게다가 한 끼의 식사가능 금액을 넘는 메뉴를 시키는 날엔 "그거 비싼 거 아니야?" 라며 웃으며 농담처럼 건네는 상사의 말이 은근히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그러니 맛도 없고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메뉴들을 고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마치 소여물 씹듯 억지로 뱃속에 욱여넣기를 몇 달 결국 나는 대표님과의 독대를 청했다.


식대를 주세요.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대표님은 원하는 식대가 얼마냐는 질문만을 하셨고 내가 제시한 금액이 수용이 가능한 수준이었는지 단번에 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처음 점심시간에 밖에 혼자 나섰던 날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회사 근처는 시장이 가까운 주택가 인근이었고 횟집, 닭갈비, 뒷고기 집 등등 식당은 많았지만 혼밥을 하기에 적당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가도 있다는 김밥천국도 없었고 유사상호를 지닌 김밥천당 같은 곳은 있었지만 얼핏 보아도 낡은 간판에 점심시간에도 손님하나 없이 연세 지긋한 주인 두 분이 홀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뭐라도 있겠지 싶어서 들어간 시장 골목 안쪽은 도넛집과 떡집만 보였고 포기해야 하나 싶을때 쯤이었다.


구하면 얻으리라~


후미진 곳의 입구도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는 비빔밥집을 발견했다.


안쪽엔 작은 공간이었지만 깨끗했고 만석이었다.  

2인석에 홀로 앉은 사람들은 익숙한듯 멀뚱히 서있는 나에게 합석을 권했다.

음식도 꽤나 맛있는 데다가 가격까지 착해서 마치 진흙 속의 진주를 찾은듯한 기분이었다. 


춥고 흐린 날씨의 어떤 날엔 뜨끈한 국물이 당겨 들어간 잔치국숫집은 알고 보니 착한 가격에 동네사람들만 알음알음 아는 맛집이었고, 또 어떤 날은 설렁탕이 먹고 싶어 검색해 찾아갔던 날 정기휴무라는 글자를 보고 침울하게 돌아 선길에 보인 맞은편 중국집은 소문이 자자하게 유명한 짬뽕 맛집이었다.


이렇게 우연히 찾아지는 맛집들을 알게 되는 소소한 재미는 나를 점심마다 밖으로 나서게 만들었다.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고, 비싼 음식을 먹어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비가 오거나 너무너무 피곤한 날은 회사 1층에 있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는데 요즘은 편의점도시락도 어찌나 잘 나오는지 꽤 만족스러운 편이었고, 이따금씩 먹기 싫은 날엔 차에 내려가 조용히 쉬고 오기도 하고, 식당을 걸어 오가는 길에 가까운 공원에 산책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점심시간이 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 밥을 먹는 것에 껄끄러움을 가지기도 한다. 

나 역시도 20살 초반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과 둘러앉아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고 왠지 모르게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은 외톨이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어느 날엔가 너무 고기가 먹고 싶었다. 급한 연락에 달려올 수 있는 친구가 없었고 식욕을 이기지 못한 나는 혼자 삼겹살집에 들어섰다.


"몇 분 이서 오셨어요?"


"혼자요."


혼자라는 말을 하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저희는 2인분부터 주문이에요."


종업원의 말에 2인분을 주문하고 먹다보니 공깃밥에 된장찌개까지 주문해서 싹 비웠다. 그렇게 계산까지 마치고 나왔던 순간 해냈다는 뿌듯함과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는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자연스러웠다. 혼자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던지, 뷔페를 가는 것, 영화를 보는 것과 여행을 하는 것 등을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종일 여러 사람들이 치이는 생활 속에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오롯이 나를 위해 조용히 식사에 집중을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나의 메뉴는 순두부 짬뽕이다. 


작가의 이전글 주관적인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