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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10. 2023

웬만하면 사는 걸로...

비싼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이를 데리고 매주 발달재활센터를 간다.


아이의 재활수업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감통(감각통합) 수업을 다닐 때마다 눈여겨보던 것들이 있었다.

사다리, 클라이밍, 미끄럼틀, 그네 등이 합쳐져 있는 듯한 각종기구들이었다.


마치 놀이터 같기도 한 그것이 집에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침 우리 집에는 아들이 셋이나 있고 코로나 시기에 집에 있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자꾸만 그 생각이 더해졌다.


대책 없는 실행력은 최고인 나는 동네 목공방을 찾아가 손짓 발짓과 언어적 표현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을 설명했다.


공방 사장님은 대략적인 견적으로 300이 넘는 금액을 불렀다. 


"네에에엑??"


경악했다. 멋모르던 그때의 나는 어리석게도 나무쪼가리 엮어 못질 좀 하면 되는 걸 가지고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만 했다. 




배달음식을 시키면 우리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뭐 별 맛도 없는 거를 이 비싼 돈 주고!! 해 먹지 그냥! "


엄마는 손맛이 유난히 좋았다.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뭐든 그저 스스스슥 어렵지 않게 만들어내곤 했다.

그런데 그건 엄마의 이야기였고 불행히도 나는 엄마랑 너무나 달랐다. 


"그래! 그까짓 거 내가 만들어보면 되지!"


호기롭게 온갖 재료를 사다 만든 음식은 분명 나와 내 가족의 입맛에 더 만족스럽긴 했다. 

그렇지만 워킹맘의 생활에 저녁마다 뭘 먹나 고민하는 스트레스를 더해 만들고 남는 재료가 상해 버리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심지어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도 돈을 냈다. 


닭볶음탕을 사 먹으면 3만 원 장 보는 건 5만 원. 물론 절반이상이 남는 재료이지만 그 재료가 상해 버리면 결국 5만 원짜리 닭볶음탕을 먹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시켜 먹는 배달음식이 적게는 3~4만 원에서 5만 원이 훌쩍 넘는데도 시켜 먹게 되는 건 결국 만드는 것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가격적으로도 맛으로도.


난 살림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그 방면으론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목공방을 나와 며칠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나 쓸지 모르는 놀이터 하나에 350만 원을 태우긴 무리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샀던 그 튼튼했던 2층침대도 방방 뛰어대며 부쉈던 아들들 이었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내가 만들면 아무래도 좀 더 신경 써서 좋게 더 튼튼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찾아보니 마침 집 근처 목공학원이 있었다.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하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톱질을 배우고 끌질을 하고 연귀맞춤이니 주먹장이니 하는 것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재미가 붙었다.

평일 저녁 남편이 퇴근 후 3시간씩 가는 목공학원은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욕심이 생긴 나는 실력이 없으면 장비빨이라고 제법 가격이 나가는 끌 세트를 사고 망치와 톱을 사고 전동드릴을 사고 그러다 보니 들고 다닐 가방도 필요했고 트리머를 사고 직쏘를 사고.... 욕심은 끝이 없고 그냥 막 사대기 시작했다.


간단한 수납장과 모니터 받침대, 협탁과 그 위에 올릴 조명, 리프트업테이블까지 만들며 제법 자신감이 붙었고 기대 없이 보았던 그렇지만 사실은 내심 기대했던 '가구제작 기능사' 자격증까지 취득했고, 일 년이 지나 올해 9월 나는 아무 기대 없이 '목공예 기능사'필기에 응시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거 기도 하고 안되면 말지 하는 생각에 보았는데 놀랍게도 60점으로 합격을 해버렸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그 순간 화면에 떠있는 합격 글자를 보고 그 시험장에서 소리를 지를뻔한 내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으며 속으로 연신 '나이스!'를 외쳤다.


난 다시 학원에 연락을 하고 등록했다.

지난 주말 내내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학원에 틀어박혀 다시 나무를 자르고 깎고 매만지는 동안 잡생각이 사라지고 즐거웠다.

한 번의 실수가 있을 때마다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더 좋은 방향성을 찾아 나아가기 위해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과 이런 이렇게 하면 더 좋겠고 저건 저렇게 하면 더 편하고 깔끔하고...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모든 과정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하루의 8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에 가는 길에 온몸에 톱밥은 뒤집어썼어도 마음이 상쾌했다.


그리고 과정이 바뀌면 필요한 도구들도 바뀌는 법.

시험을 준비하며 기존에 없었지만 이제는 필요한 도구들을 사람들과 함께 주문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시간. 잠시 담소를 나누며 '왜 목공을 하기 시작했나?' 하는 것들에 대화를 나누면서 내 이야기를 들은 한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근데 이미 그 놀이터 만드는 가격 이상은 쓴 거 같은데?"


그랬다. 심지어 우리 집엔 아직도 놀이터가 없고 코로나는 지나갔으며 2년 동안 아이들은 저들끼리 밖에 나가 놀만큼 자라 버렸다.


나는 어색하고 큰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네. 놀이터가 마음속에만 있네. 마음속에!"




비록 놀이터는 없지만 기술은 남았다. 비록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이 기술이 얼마나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형의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스스로의 위안을 삼아 본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이 즐거웠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후회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떤 물건이 비싼 데에는 다 비싼 이유가 있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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