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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11. 2023

나에게도 비상등이 필요해.

나는 지금 위험할지도 몰라요. 

운전을 하게 되면 수많은 조작버튼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버튼이 하나 있다.


빨간색의 삼각형으로 된 비상등 버튼이다.


대게 다른 버튼이 대시보드의 색과 비슷하게 되어있는 반면 그 비상등 버튼 하나만큼은 눈에 띄는 빨간색으로 되어있다. 


이 비상등의 역할은 다양하다.


길 위에 차가 서거나 혹은 사고가 나서 갓길에 주차되어 있을 때 켜기도 하고 안개가 자욱한 날 도로 위에서 조심하라는 의미로 깜빡깜빡 켜놓기도 한다.

이따금씩은 잠시 주정차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또 차선변경을 했을 때 뒷 차에 고맙다와 미안하다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매번 사용될 때마다 어떤 의미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앞뒤 상황과 관련하여 설명 없이도 다른 이들이 찰떡처럼 알아볼 수 있으니 신기한 마법의 버튼이 아닐 수 없다. 





일분일초가 바쁜 아침시간 아이의 손을 잡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이의 스쿨버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출퇴근용으로 타는 차가 주차해 놓은 자리에 없었다. 혹시나 착각했나 싶어 지하 2층까지 내려가봤지만 차는 보이지 않았다.


리모컨을 누르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지만 차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초조함에 더해 무섭기까지 했다.


어제저녁 남편이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는 문득 집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순간 무서웠다며 "치매는 아니겠지?" 하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게 떠올랐다.


급한 김에 다른 차에 올라탔다. 차체가 크서 가족 모두가 이동하지 않으면 좀처럼 타지 않는 차였다.

다행히 차를 찾으러 다니던 길목에 주차해 놓은 터라 금세 출발할 수 있었다. 


시간은 이미 스쿨버스가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나는 차에 시동을 켜고 급히 출발하며 차량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학교로 데려다주겠습니다. "


- 아니에요 어머님. 저희가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승차장소까지는 차로 3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죄송한 마음에 말씀드렸더니 감사하게도 기다려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이를 버스에 태우며 연신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손을 흔들어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쳐다보고는 다시 차에 올라타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당신 혹시 아침이(모닝) 타고 갔어?"


-아니. 아! 맞다!! 내가 지상주차장에 올려놨었는데! 깜박했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 말투에 순간 머리에서 뭔가 툭 끊어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을 해줘야지!! 아침부터 10분 넘게 지하주차장을 얼마나 돌아다녔는 줄이나 알아? 애 버스도 놓칠뻔하고 나도 지각하게 생겼는데!! 너는 아침에 니 몸뚱이 하나만 나가면 되지만 난 아니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나는 운전석에 앉아 전화기 건너편의 남편에게 있는 대로 화를 내고는 전화를 끊었다.





사람마다 감정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는 포인트가 있다.

그건 사람마다 달라서 어느 누구에게 이해해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건 누군가에겐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겐 때때로 아무것도 아니고 말하기에 치사하고 쪼잔한 부분일 수도 있다.

눈치껏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따금씩은 그런 것조차 서운하다.


나는 집에 가서 지상주차장 끝자락에 있는 차에 바꿔 올라타고는 회사에 출근했다. 출근길 도중에도 내내 화가 사그라들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그때 앞차가 갑자기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거리가 있었기에 나도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습관적으로 비상등을 켰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너 번 정도 비상등의 깜박이는 소리를 들으니 왠지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 규칙적인 소리가 등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 머리 위에도 비상등을 달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화가 났을 때 우울할 때 외로울 때 그저 혼자 두었으면 좋을 때 그럴 때 빨간 세모버튼을 누르면 내가 뭐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마법 버튼. 


왜 급발진이야? 


참고 참다 화를 내면 저런 말을 듣는다. 

급발진이라니... 사실 나는 수차례 그에게 경고등을 켰는데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표정으로 몸짓으로 때로는 틱틱거리는 말투로 여러 형태로 전했지만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처음엔 이러지 않았는데 나는 이렇고 이런 것에 서운하고 이런 것에 기쁘다고 하나하나 설명하고 또 어떤 때는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세심하게 살펴주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제는 내가 나를 설명하는 것조차 지쳐가는 요즘 나는 나만의 비상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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