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다 Oct 13. 2023

입을 거 하나 없네.

허벅지 보호대의 비밀.

"입을게 하나도 없어."


남편이 투덜거리며 말하면서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티셔츠 하나와 바지 하나가 장바구니에 담겨있는 채였다. 아마도 결제를 해달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라고?"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입을 게 없다고~!"


남편이 재촉하는 소리에 결제를 해주고는 일어나 방으로 가서 남편의 옷장을 열었다.


"봐라. 여기도 옷. 저기도 옷. 이거 다 옷 아니냐?"


한참을 잔소리를 해대는데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더니 말했다.


"우리 이거... 좀 뭐 남가 바뀐 거 같지 않아?"




우리 집 현관 옆 벽 한 면에는 커다란 전신거울이 있다.

그 거울 속에는 뚱뚱하고 머리는 부스스하며 목이 죽 늘어난 티셔츠에 한때 시원함이 장점이라며 유행했던 냉장고바지를 입고 있는 전반적으로 '예쁘다'라는 단어에는 단 하나도 맞는 조건이 없는 한 여자가 서있었다.


예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때가 있었다.


한 이십 대 중 후반쯤까지였나 보다.


다이어트는 마치 숙명 같았고 칼로리를 줄여준다는 작고 비싼 음료수와 각종운동(이건 게을러서 매번 실패했다.)에 굶기를 밥먹듯이. 아니 안 먹었으니 밥 먹듯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굶는 게 일상이었다.

좀 쪘다 싶을 땐 단식원을 다녀오기도 했을 정도로 그때는 그랬다.


단식원은 이상한 곳이었다.

굶으러 오는 곳인데 굶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

누가 봐도 뼈밖에 남지 않았건만 1~2 킬로그램 감량을 위해 그 큰돈을 지불하고 왔다고 했다.

나 역시 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몸이었으나 그곳에 있으면 세상 뚱뚱이가 되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있으면 무엇이든 더 열심히 했고 효과는 확실했다. 문제는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는 것이었지만.


예쁜 옷을 입고 예쁜 머리를 하고 예쁘게 꾸미고 거울을 볼 때면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미 결혼을 할 시점에도 예전처럼 최선의 예쁨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의 나는 더 이상 예전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부터는 그야말로 완벽히 후줄근한 아줌마가 되었다.

아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경을 써서 먹고 입히면서 나 스스로에게 그러지 못했다.


머리를 감지 않으며 모자를 쓰면 된다. 옷은 몸만 가리면 되지. 음식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 가족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그마저도 애들을 이리저리 신경 써서 먹이느라 때를 놓쳐 남은 것을 먹기 일쑤였다.


생활이 망가지면 몸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정리한다.

나는 아이들 옷을 정리하고 남편의 옷은 남편이 고르고 정리한다.

남편이 옷이 없다며 툴툴거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형들의 옷을 물려 입기만 한 막내에게 이번엔 새 옷을 두어 벌 사줘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정리가 끝나고도 남편은 볼멘소리로 오며 가며 계속 옷이 없다고 어필했고 결국 새 옷을 얻어내고는 아이처럼 웃었다.


사실 입을 옷이 없는 건 나야말로 마찬가지였다.

문득 몇 해 전 미니멀라이프 어쩌고 하며 대대적인 옷정리로 내 옛 옷상자를 발견했을 때가 떠올랐다.

스물다섯인가. 그즈음에 입던 탑을 발견했다. 어깨와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하얀색 옷이었는데 그냥 눈으로 봐도 내 몸에 들어갈 거 같지 않았다.

'예전에 저걸 어떻게 입었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그걸 내 다리에 끼우고는 장난스레 씩 웃었다.


"허벅지 보호대냐?"


'저걸 죽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정말이지 너무 꼭 맞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남편의 말이 너무 우스워 웃음이 터졌다.


그때 생각을 하면서 웃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니야. 나도 생각해 보니까 입을 게 없네."


내 말에 남편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


"그래. 내가 진즉부터 당신 옷 좀 사라고 했잖아. 애들 거만 사지 말고. 주말에 옷 사러 갈까? 나간 김에 외식도 하고."


나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살 빼서 입을래. 살 빼면 입을 거 많아. 다이어트해야지.  나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건데 오늘 치킨 먹을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언제나 그러하듯 역시나 내 옷을 사는 건 조금 아깝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고 치킨은 맛있다.


비록 예쁜 아줌마는 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외관은 초라할지언정 행복하다는 것.


맛있는 걸 먹고 내가 예쁘지 않아도 예쁘다 말해주는   가족이 있고 그것이 지금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도 비상등이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