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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31. 2023

엄마는 어쩔 수 없다.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아휴~! 그만 좀 먹어!"


이따금씩 내가 밥 이외의 무언가를 주섬주섬 먹을 때면 엄마는 등짝 스메싱을 날리며 잔소리를 했다.


"여자애가. 그러다 살찌면 어쩌려고!! 몸에 좋지도 않은걸!! "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잔소리를 계속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앞에는 과일 접시가 올라와있었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내가 살이 많이 쪘다며 한숨을 쉬면서도 엄마는 우리 집 냉장고가 비워질세라 채워주셨다.


김장김치, 밑반찬, 계란, 고기 등등 떨어질만하면 채워주셨고 손이 큰 우리 엄마의 음식양은 우리 식구가 먹기엔 너무 많아서 먹다 먹다 미처 다 먹지 못하고 상해 버리는 때도 많았다.


가져오지 말라고 말라고 한사코 거절하면 마음이 상해서는


"해줘도 지랄이야!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한다 안 해!" 


하고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한가득 음식을 싸 오곤 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이었다.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이 먹는 것이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나 역시도 끼니를 대충 때우는 날이 많으면서 아이들이 간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은 용납이 안 됐다.


어떻게든 따뜻한 쌀밥을 먹여야 한 끼를 해결한 것만 같았다.


남편은 밥에 집착하지 말라며 면을 먹든 떡을 먹든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매번 나를 나무랐지만 내 마음이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어떤 날은 짜증도 내가며 꼭 밥으로 된 한 끼를 먹이곤 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요리에 재능이 없던 나도 제법 솜씨가 늘어 있었다. 


아이들이 밥을 먹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엄마가 해준 게 최고야!" 하고 말하면 세상 최고의 칭찬 같았다.


큰 아이가 복용하던 약의 부작용으로 식탐이 늘었던 탓에 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때가 있었는데 너무 먹는 아이가 걱정되면서도 아이가 배고프다고 먹을 걸 찾으면 나도 모르게 한상 푸짐하게 차려주곤 했다.


아이들의 감정은 숨김없이 바로 표현된다.

너무 좋아하며 발을 동동거리고 먹는 아이를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건 이런 기분이었다.


뿌듯하고 예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언젠가 아이들과의 산책길에 갑작스레 엄마의 집에 갔던 날 예정에 없던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엄마 음식이 전같지가 않네. '


그때는 그냥 나이가 들면 입맛이 둔해진다더니 엄마의 입맛도 달라졌나 보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 해오는 음식은 변함없이 맛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아이들의 음식을 하면서 문득 그 해답을 찾았다.


엄마는 엄마 입맛이 아닌 나의 입맛으로 음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엄마집에 있는 엄마 입에 맞춘 음식이 내 입에 꼭 맞을 리 없었다.


나 역시 아이들이 먹는 것은 맵지 않게 혹은 조금 달게 혹은 조금 싱겁게 만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먹고 있을 때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던 것들은 거의 과자, 음료수 같은 것들이었다.


자식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마음. 그것이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졌을까.


비로소 부모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작가의 이전글 인정을 받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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